요시다의 적나라한 나날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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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미통 독자 여러분, 『신생 FFXIV』 플레이어 여러분, 안녕하세요. 주식회사 스퀘어에닉스, 개발 코퍼레이트 이그제큐티브 겸 디비전 이그제큐티브 겸 『신생 FFXIV』 프로듀서 겸 디렉터인 요시다 나오키라고 합니다(길어!)
이번에 패미통에서 「매주 『신생 FFXIV』에 페이지를 할애할 테니 격주라도 좋으니까 칼럼 써 줘!」라고 정말로 감~사한 말씀이 있어서 이렇게 칼럼을 씁니다(세상은 기브 앤 테이크). 주로 『신생 FFXIV』의 이제까지의 전말이나 온라인게임 시장, 기타 게임에 관련된 것, 관련되지 않은 것 등을 적나라하게 써 나갈 생각입니다.
……이크, 무엇을 쓰더라도 우선은 자기소개부터 하는 것이 순서인 것 같으니 이번은 저에 관하여 쓰면서 온라인 게임과의 관계에 대하여 가볍게 쓰겠습니다. 1973년 삿포로에서 태어나, 올해로 불혹을 맞이한 “아저씨 게이머 겸 게임 개발자”가 요시다입니다. 요시다는 여기를 읽고 계신 여러분과 같이 단순한 게임을 좋아하는 게이머였습니다만, 「나는 게임 개발자가 되겠어!(두둥)」라고 초등학교 6학년 때에 근거도 없는 자신감에 차서 졸업작문을 쓰고 그대로 돌진해 왔더니 어느 사이에 학생일 때에, 당시 건강했던 허드슨에 알바 입사. 정신을 차리니 벌써 20년이 지났다, 라는 상황입니다(나도 나이 들었네……).
지금은 MMO(다중 사용자 동시 참가형 온라인)RPG라는 장르인 『신생 FFXIV』의 프로듀서와 디렉터를 겸임하고 있습니다만, 온라인 게임과의 친교는 아직 일보다 게이머로서가 더 긴 상태. 처음 온라인 게임을 접한 것은 1997년에 발매된 Blizzard Entertainment의 명작 『Diablo(디아블로)』(이하, 『디아블로』)입니다. “핵앤슬래쉬 온라인 게임”이라는 장르를 수립한 기념비적 작품으로, 13층의 던전을 계속해서 몇 번이나 돌아서 아이템을 모아 마왕 디아블로를 쓰러뜨린다는 내용입니다. 그 어두운 세계관, 고품질 그래픽, 그리고 4명이 하는 멀티플레이의 재미가 전 세계의 게이머를 사로잡았습니다.
PC게임 잡지에 작게 사진이 올라온 것이 기억에 남아서, 그 작은 기사를 본 후 상당히 발매를 기대했습니다(참고로 그 기사로부터 발매까지 연기에 연기를 반복해서 상당히 오래 기다렸습니다……). Blizzard Entertainment는 당시부터 “우리가 플레이해서, 게이머로서 납득할 수 있을 때까지 발매하지 않는다”라는 장인 기질의 고집쟁이 아저씨 같은 회사로, 기다리는 플레이어는 정말 안달복달하면서 정보를 쫓아다녔습니다.
발매되고부터는 사내 LAN을 거쳐서 일은 내팽개치고 플레이!(야) 그 결과, 요시다를 포함한 사내 『디아블로』 동료들은 소지할 수 있는 아이템 개수에 제한이 있기에 모은 아이템 보관에 곤란해하기 시작합니다. 그때 선배가 무서운 폭권를 휘두릅니다!
사내 PC에 “CHIKYU(역주:’지구’의 일어 발음)”라는 캐릭터로 게임월드를 기동해서 각 층의 몬스터를 섬멸하고 거기에 아이템을 보관하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그 PC는 24시간 풀가동(웃음).
「우하하-, 5층은 내 창고다-!」라는 느낌으로 요시다도 대량의 아이템을 땅에 내려두었습니다만.
뭐, 이 PC는 약 13주 후에 갑자기 멈추어 버려서 사내 메일로 “지구 사망 소식”이라는 비통한 연락이 왔습니다만……(당연히 아이템은 모두 소멸).
이렇게 요시다의 게임 개발자 인생과 온라인게임 인생은 비슷한 타이밍에 시작되고, 그 이후도 게임 개발과 동시에 늘 온라인 게임을 “상당히 깊이” 플레이해 왔습니다. 이 시기에 접한 게임이나 그 일화, 그리고 온라인 게임 시장이나 장르의 변동은 앞으로 칼럼 안에서 서서히 풀어나가고자 합니다.
그런 『디아블로』와의 만남으로부터 15년 이상이 지나고, 정신을 차리니 스퀘어에닉스에 재적하고 있고, 옛날부터 꿈꾸던 『드래곤퀘스트』 일에 관여하며 아케이드게임이나, 온라인게임이나, HD게임 등 디바이스도 하드도 특별히 가리지 않고 꾸준히 일을 해 왔습니다. 미디어에 노출되는 것을 싫어해서(여기에서 그것을 써도 되나?) 인터뷰 등은 모두 거절했습니다만…….
모든 것이 크게 바뀐 것은 2010년 12월 3일. 당시 정식 서비스가 개시되고 약 3개월쯤 지났을 때 『구 FFXIV』의 전권을 요시다가 이어받게 된 날부터였습니다.
일본의 온라인게임에 큰 진보를 가져온 『FFXI』의 후계로 기대받던 『구 FFXIV』. 그러나 낮은 게임 품질이 혹평받고 준비가 다 되기 전에 성급히 정식 서비스를 함으로써 더욱 큰 비난을 한창 받고 있는 사건입니다.
그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약 3년간 정말로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계속해서 응원해 주신 플레이어 여러분께 감사하는 마음도 담아서 격주이기는 하지만, 다음부터 『구 FFXIV』부터 『신생 FFXIV』에 이르기까지의 에피소드를 온라인게임 이야깃거리를 섞어가며 시간 차례대로 전달하고자 합니다.
아마도 도움이 안 되는 것투성이인 칼럼이 될 것 같지만, 유쾌하고 즐겁게 함께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바라건대, 몇 주 만에 「요시다의 차기작을 기대해 주세요!」가 되지 않기를 기도하며 ……._M#]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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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미통 독자 여러분, 『신생 FFXIV』 플레이어 여러분, 안녕하세요. 『신생 FFXIV』 프로듀서 겸 디렉터 요시다 나오키입니다. 자 그럼, 격주 연재 2번째인 칼럼은 지난번에 말씀드린 대로 『구 FFXIV』을 이어받게 된 2010년 말쯤의 이야기를 파고들겠습니다. 비교적 적나라하게 써나가겠으므로 갑자기 연재가 중단되면 평판이 대단히 나쁘거나, 요시다가 회사에 말살되었거나, 혹은 그 양쪽인 줄 아십시오(아하하).
이후, 이 칼럼에서는 구별을 위하여 2010년 9월 30일에 서비스를 개시하여 2012년 11월 11일에 전 월드 다운이 시행된 오리지널 『FFXIV』을 『구 FFXIV』. 2013년 8월 27일에 서비스를 개시한 『신생 에올제아』를 『신생 FFXIV』으로 표기하겠습니다.
「『구 FFXIV』 체제가 변경됩니다」라는 공지를 낸 것은 2011년 12월 10일입니다만, 실제로 사내 각 부서에 그것이 통지된 것이 12월 2일. 애초에 제가 『구 FFXIV』에 관련된 모든 책임을 이어받는 것이 사내에서 확정된 것은 11월 27일로, 공식 통지까지 겨우 2주일밖에 기간이 없었습니다. 발표 당시 여러분의 반응은 『뭐? 요시다? 누구?』라는 아주 심플한 것이었습니다(최근에도 다른 의미로 「요시다?」라는 말은 듣습니다만……).
『FFXIV』의 장르는 MMO(다중 사용자 동시 참가형 온라인)RPG로, 『FF』시리즈의 MMORPG라면 『FFXI』이 있습니다만, 저는 『FFXI』은 거의 플레이하지 않았습니다. 그 당시 온라인 게임계에는 『EverQuest(에버퀘스트)』(이하, 『EQ』)라는 3D MMORPG의 원조, 궁극의 코어게임이 존재하며, 『FFXI』은 당시 스퀘어에 계시던 사카구치 씨(사카구치 히로노부 씨. 『FF』시리즈를 만들어낸 부모로 알려짐)가 『EQ』에 빠져서 「이것을 『FF』으로!」라는 호령 아래에 개발이 시작된 게임이었습니다. 당연히 저도 『EQ』를 플레이하고 있었고, 도저히 두 개의 MMORPG를 병행할 수 없어서 『FFXI』은 오로지 “보고 조사하는” 것에 집중했습니다. 그 정도로 『FFXI』의 메모리 설계는 천재적으로, 벽과 바닥 텍스쳐타일링은 지금도 세계 제일이라고 생각합니다(제 1레벨 캐릭터가 지금도 쥬노의 벽을 바라보고 있는 상태 그대로일 겁니다(웃음)).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런 저는 2010년 9월 당시, 인터넷상에서 『구 FFXIV』의 격렬한 비난이 일어났을 때도 「MMORPG 런칭은 어느 세대나 힘들구나. 하지만 『FFXI』 스태프니까 어떻게든 되겠지」라고, 어느 의미로 남의 일처럼 보고 있었습니다(지금 생각하면 이것도 “교만”이었습니다). 당시의 저는 『드래곤퀘스트X』(이하, 『DQX』)의 사내 α판이 완성되어 회사에서 「『DQX』을 떠나 완전 신규 타이틀을 만들라」고 명령받아 2개의 기획 세우기로 분주했습니다. 그 신규 타이틀 중 하나에 『신생 FFXIV』의 현 어시스턴트 디렉터인 타카이 히로시와 나중에 『신생 FFXIV』의 메인 시나리오 담당이 되는 마에히로 카즈토요가 있고, 또한 『택틱스 오우거 운명의 수레바퀴』의 제작이 끝난 미나가와 히로시도 제 기획에 합류 직전, 또한 컨셉 아티스트로 요시다 아키히코로, 요시다 화백이 러프를 그리기 시작하던 시기였습니다.
바로 그때, 『구 FFXIV』팀에서 「유저 인터페이스 수정에 미나가와를, 전투 시스템 관리와 조정에 타카이를 빌려 달라」는 요청이 들어옵니다. 미나가와는 게임의 디렉터, 아트 디렉터까지 할 수 있는 사람이지만, 특히 유저 인터페이스에 관하여 제1인자이고, 타카이는 『FFXI』의 VFX 담당으로 『FFXI』의 초기 발매에 힘쓴 실적이 있습니다(특히 타카이는 게임 디자인에도 상당히 정통하며, 『FFXI』의 “연계” 시스템도 그가 개발한 것입니다).
신규 프로젝트의 게임 디자인과 디렉터를 하던 저는 그래도 아직 「이거 상당히 위험하구나」 정도의 감각으로, 우선은 회사 방침을 우선하여 OK를 내렸습니다. 「우선 상황을 보고 이야기를 듣고 오겠다」며 『구 FFXIV』으로 간 타카이와 미나가와입니다만, 그날 밤에 「웃기지도 않는다」며 돌아왔습니다. 동시에 회사 명령으로 『구 FFXIV』의 기술지원 서포트를 의뢰받았던 CTO 하시모토 요시히사도 끼어서, 2인 파티로 보냈건만 3명이 되어서 돌아온 상황. 거기에 더해 프로젝트 매니저 M도 끼어서 정신을 차리니 라이트 파티가.
이야기를 들어 보니 「어쨌든 어디에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를 정도로 문제가 많다」라는 것을 알았으므로(모른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은 실은 아주 중요) 우선은 문제를 정의하기 위해서 “MMORPG로서 무엇이 문제인지를 조사하는” 것부터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이때부터 한동안 저는 낮 시간을 신규 프로젝트 작업에 활용하고, 밤은 『구 FFXIV』에 관하여 5명이 함께 문제의 항목을 도출해서 다음날 조사할 곳을 지시하는 나날이 계속됩니다. 생각해 보면, 이 무렵이 『신생 FFXIV』에 이르기까지의 시작지점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조사가 시작되고 5일째 정도에 사태의 중대함을 인식하고(지금 되돌아보면, 그래도 잘못 파악하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만) 10월 9일에는 당시 대표이사장이었던 와다(와다 요이치 씨. 현 스퀘어에닉스 이사회장)에게 「회사 전체 비상사태로 대응하지 않으면 돌이킬 수 없게 됩니다!」라고 직접 담판을 짓게 되는데……. 어이쿠, 지면이 다 된 듯하니 이어지는 내용은 다음에!(이거 연재 몇 편에서 끝나려나……)_M#]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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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미통 독자 여러분, 『신생 FFXIV』 플레이어 여러분, 안녕하세요. 『신생 FFXIV』 프로듀서 겸 디렉터 요시다 나오키입니다. 격주 연재 3번째 칼럼입니다.
지난 회는 “「신규 프로젝트를 시작하라」는 회사 명령을 받았는데, 그 신규 프로젝트 동료였던 타카이 히로시와 미나가와 히로시를 『구 FFXIV』 팀의 의뢰로 빼앗기고 분개하여 당시 사장이었던 와다 요이치에게 직접 담판 지으러 간다”라는 곳에서 끝났습니다(벌써 185문자 소화).
스태프를 빼앗기고 분개, 는 농담입니다만, “왜 당시 상태로 『구 FFXIV』의 정식 서비스를 개시했느냐”라는 것에 분개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게다가 요시다는 이 시점에서 누구에게도 정식 협력 요청을 받지 않았는데 어째서인지 필사적으로 뛰어다니고 있었기에 약간 삐쳐 있었던 듯한 기분도 듭니다(솔직!).
특히 이제까지 “『FF』시리즈의 넘버링 제작”에 관여해 온 타카이나 미나가와의 이야기를 듣자하니 「『FF』시리즈는 매번 마지막 최종단계를 회사 전체 비상사태로 넘겨 왔다. 그렇기에 엄청난 파워가 된다」라고 해서 더욱 「왜 『구 FFXIV』의 이 상황에서 더더욱 비상사태가 되지 않는가?」라는 것을 와다에게 물었습니다.
당연하지만, 와다도 상당히 고민하고 있었고 사내의 라인 밸런스(개발 라인의 능력이나 부하의 균등화)와 수익에 대해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터무니없이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만, 저는 그다지 착하지 않아서 “그것은 사장의 고민이고, 사장이니까 어쩔 수 없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서(냉정해), 「자, 어떻게 할 겁니까?」라고 따졌습니다. 당시의 저는 특히 초조해하고 있었는데, 정식 서비스가 시작된 이상, 1초라도 빨리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평판 면으로도, 신뢰성 면으로도, 업데이트 면으로도, 이익 면으로도 치명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MMO(다중 사용자 동시 참가형 온라인)RPG는 터무니없이 어려운 “비즈니스”입니다. 제작에 필요한 평균 개발기간은 4~5년 이상에 이르며 수백 명 규모의 개발팀과 데이터베이스 서버와 게임서버, 운영팀의 유지 등등, 막대한 투자 코스트가 들기에 일반적으로는 수십억의 투자 비즈니스라고 일컬어집니다. 또한, 스탠드얼론 패키지 비즈니스와 달리, 단순히 개발하고 끝(최근에는 DLC가 있습니다만)이 아니라, 업데이트와 운영 코스트가 늘 발생합니다. 그만큼 플레이어 여러분으로부터 서브 스크립션(※1)이나 마이크로 트랜젝션(※2)으로 플레이 요금을 받아 투자 회수와 이익을 창출하게 됩니다. 일본에서 MMORPG가 제작되기 어렵고 외국에서는 많이 제작되는 이유가 여기에 기인합니다만,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므로 나중에 칼럼에서 언급하겠습니다(한 번 썼다가 문자 수 오버로 눈물을 머금고 지웠습니다).
제가 당시 마구 초조해하던 것은 이 부분입니다. 게임의 완성도가 나쁘면 많은 고객은 플레이를 그만두고 맙니다. 플레이를 그만두면 매달의 이익이 감소하여 투자 회수는 고사하고 업데이트를 위한 인원 확보(추가투자)도 할 수 없게 됩니다. 그러나 MMORPG는 한 번 운영을 개시하면 그리 간단히 운영을 중지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플레이어 여러분의 캐릭터 데이터나 게임 안의 재산은 단순히 “0과 1″로 결성된 데이터가 아니라, 추억과 시간과 고생과 동료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구 FFXIV』이 요구하는 PC스펙은 상당히 높아서, 당시는 20만 엔 이상의 돈을 내고 플레이 환경을 갖춘 고객도 아주 많이 계셨습니다.
그 데이터와 플레이 환경으로의 지출을 무시하고 운영을 중지하는 것은 고객에게 돈 이상의 충격을 줄 것이고, 무엇보다도 회사의 신뢰성에 헤아릴 수 없는 대미지가 됩니다. 단순히 운영을 그만두고 데이터를 버려 버리는 회사라고 인식되고 말면 손실은 이번 게임에 대한 투자뿐만 아니라, 앞으로 제작할 모든 게임의 이익에 파급되게 됩니다. 저라면 그런 회사가 새로운 온라인게임을 낸다 해도 아마 눈길도 주지 않을 겁니다. 무엇보다도 이번은 “『FF』시리즈의 넘버링 타이틀”입니다. 스퀘어에닉스에 있어서 『FF』은 “특히” 신뢰를 배신해서는 안 되는 타이틀일 터(그렇다고 해서 다른 타이틀은 배신해도 된다는 말은 아닙니다. 만약을 위해서).
즉, 1초라도 오래 이 상황이 지속됨으로써 “손님이 플레이를 그만두고, 신뢰를 잃고, 과금수익이 줄고, 결과적으로 운영정지의 위험이 커지는” 부정적인 연쇄작용이 어마어마하게 두려웠습니다. 그러나 당시 상황은 더 나빠서 「애초에 과금 개시가 가능한 레벨이 아니다」라고 제가 와다에게 단언함으로써 와다는 한층 더 고민하게 되었을 겁니다(그때 일은 죄송합니다). 물론 요시다의 발언이 옳다는 보증도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막대한 의논, 많은 스태프에 대한 사정청취와 재정 면의 검토가 진행되어 “체제를 바꾸고 요시다가 담당한다”라는 결론이 나오기까지 약 50일의 시간을 요하게 되었습니다. “신생”이라는 사상이 태어난 것은 이 약 50일이라는 기간의 결과이기도 합니다. 만약 즉시 결단이었을 때는 “『구 FFXIV』은 일단정지하고 개선하고 나서 운영 재개”라는 방법을 썼을 거라고 생각하므로, “세계를 부수고 신생한다”라는, 이번 흐름은 되지 않았을 겁니다. 왜냐하면……은 다시 다음에!(정말로 끝나기는 하려나, 이거……)
※1 : 서브 스크립션(월액과금) ……매월 다음 달의 플레이 요금을 월 단위로 정액 지불하는 것. MMORPG는 서브 스크립션 모델로 시작할 경우가 많다.
※2 : 마이크로 트랜젝션(소액과금) ……아이템이나 게임 안 통화를 100엔이나 300엔 등의 소액요금으로 구입하는 것. 게임 플레이 자체는 무료라는 프리 투 플레이(F2P) 모델 게임에 많이 채용되어 있다._M#]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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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미통 독자 여러분, 『신생 FFXIV』 플레이어 여러분 안녕하세요. 『신생 FFXIV』 프로듀서 겸 디렉터 요시다 나오키입니다. 격주 연재 4번째 칼럼입니다. 『구 FFXIV』에서 『신생 FFXIV』으로의 체제변경 전야가 어떤 상황이었는지는 이번이 완결입니다!(결의표명)
『구 FFXIV』을 회사 전체 비상사태로 대응할지 어떨지, 이 의논이 개시된 것은 2010년 10월 9일이었습니다. 가령 이 시점에서 결단이 내려져 개발이나 운영체제가 변경되었을 경우, 요시다는 「고객께 사죄한 후에 일단 서비스를 정지하고 개선을 한 후에 운영을 재개한다」는 전략을 취하자고 진언할 생각이었습니다. 이유는 몇 가지 있습니다.
우선, 고객으로부터 α테스트, β테스트를 통해 「컨텐츠를 더 보충하고, 인터페이스를 수정하고, 서버 안정성을 올린 후에 서비스를 개시하는 것이 좋다!」라는 말을 많이 들은 것을 들 수 있습니다. 『FFXI』을 오랫동안 플레이한 고객이 많아 분노도 컸을 거로 생각합니다만, 무엇보다도 『구 FFXIV』의 앞날을 매우 걱정해 주셨습니다.
또한, 정식 서비스를 개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30일간의 무료 기간도 끝나지 않았기에 발매가 경솔했던 것을 깊이 사죄하고 품질을 높이고서 다시 운영을 재개한다는 방침을 공개함으로써 “스퀘어에닉스도 드디어 이 상황을 문제시하고 있다”는 것을 고객께 전할 수 있으며, 서버를 열어 둠으로 인한 악평의 만연도 어느 정도 억제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물론 수정 내용이 확실할 필요가 있는 것은 대전제입니다. 만약 이 시기에 서비스를 정지한다면 패키지 환불도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서비스는 정지하지 않았습니다만, 이 사상이 레거시 특전과 1년 이상의 무료기간 연장, 신생의 클라이언트로 무료 교체라는 시책으로 이어집니다.
그러나 체제변경(※)이 내부적으로 확정된 것은 2010년 11월 27일 오전 4시. 풀스크램블로 각처로의 연락과 통지를 시작했습니다만, 개발팀으로의 통지가 12월 2일, 고객께로의 공지는 12월 10일이 되고, 이 시점에서 이미 정식 서비스 개시로부터 2개월 이상이 지나고 말았습니다. 로그인 수는 날로 저하하고 있다고는 해도, 아직 수십만 명의 고객이 플레이하고 있고 캐릭터는 성장을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이때에는 “질려서 플레이를 중지하고만 분”과 “업데이트를 믿고 플레이를 계속하는 분”의 양극화가 진행되어 상정했던 “일단 운영을 정지한다”는 선택지는 요시다의 머릿속에서 사라졌습니다. 만약 그때 정지를 선택했다면 어느 쪽의 고객께나 「늦었어! 할 거라면 더 빨리 그렇게 해!」라고 혼났을 겁니다. 이러한 생각 아래에 “운영을 정지하지 않고 어디까지 개선할 수 있는가”라는 다음 목표 설정이 제 안에서 이루어졌으므로, 여기가 “근본 수정인가, 운영 계속 수정인가”라는 첫 분기점이 되었습니다.(“신생”이라는 발상이 나오는 분기점은 다음 이후 칼럼에서).
이 칼럼 집필을 위하여 당시의 메일과 제 스케줄을 되돌아보고 있습니다만, 신물이 올라올 정도로 지독하군요(쓴웃음). 서버 다운과 서버 재기동의 긴급 메일은 날마다 200건 이상, 스태프와의 상의는 2011년 2월쯤에는 하루 평균 400건 정도에 달하고, 스케줄은 글자로 빼곡히 채워져 있습니다. 게다가 중복된 예정투성이라, 어떻게 처리했었는지 기억이 확실하지 않습니다(쓴웃음). 당시는 도저히 말하지 못했지만, 이 체제 변경 후 연말 끝까지 『구 FFXIV』 스태프는 패치 1.2 작업자 이외, 강제로 휴가를 쓰게 했습니다(패치 작업자는 나중에 휴가를 주었습니다).
일을 하는 데에 휴가는 아주 중요합니다(아아, 『신생 FFXIV』 스태프에게 돌 맞겠다)다만, 게임 제작을 일로 삼는 경우 안정적인 휴가라기보다도 몰아칠 때는 몰아치고, 쉴 때는 한 번에 쉬는 상황이 되기 쉽습니다(이상은 물론 다릅니다만…… 아아, 돌은 내려놔). 게임에는 “정답”이 없기에 정성껏 만들면 만든 만큼 좋아지는 것이므로 프로듀서나 디렉터가 「여기에서 끝내도 된다!」고 정하는 것도 일 중 하나입니다. 특히 큰 업데이트가 정기적으로 시행되는 MMORPG의 경우 스케줄과의 다람쥐 쳇바퀴 돌기에 빠져들 때도 잦아서 스태프를 정말 고생하게 만듭니다(그만큼 고객의 반응을 직접 볼 수 있으므로 정말 하는 보람이 있는 일이기도 합니다!).
당시 『구 FFXIV』은 보이지 않는 골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는 분위기와 고객의 욕설, 거기에 더해 사내에서의 비판(적나라)도 있어 예사롭지 않을 정도로 피폐해 있었습니다. 게다가 개발 리드 층의 총 교체가 선언되어 어떤 의미로 「아직도 계속해!?」라고 반대로 괴로워진 스태프도 많았을 겁니다. 우리 개발팀과 운영팀도 플레이어 여러분과 같은 인간입니다. 고민도 하고 지치기도 하므로 “『구 FFXIV』의 재건”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휴식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반대로 스태프가 쉬는 동안 기운찬 리드 층이 필사적으로 일해서 앞으로의 계획을 명확히 해 두면 스태프의 추진력과 속도가 올라가서 결과적으로 고객께 빨리 개선을 전해 드릴 수 있을 거로 생각했습니다.
여담입니다만, 이 체제 변경 공지 시기, 똑같이 게임 업계에 계시는 동성동명의 “요시다 나오키”씨께는 요시다가 무명에도 정도가 있을 정도로 무명이었기에 폐를 끼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정식 서비스 이후 어쨌든 어두운 화제밖에 없던 『FFXIV』에 있어 그때 웹상의 반응은 첫 “웃음이 있는” 사건이었던 것 같습니다. 요시다는 긍정적으로 생각하기에 웹상의 반응을 보며 「아아, 운이 좋다」고 생각한 것을 여기에 적어 두겠습니다(노여우셨다면 정말 죄송합니다……).
2010년 말, 요시다 개인으로서 지금 되돌아보면 터무니없이 큰 분기점을 지나서 『구 FFXIV』은 “신생”으로 나아가기 시작합니다. 이하, 다음에!(조금 더 다른 게임도 언급하겠습니다)
※『FFXIV』 개발체제 변경…… 2010년 12월 10일에 공지된 개발체제 변경 공지. 플레이어 커뮤니티 사이트 “구 The Lodestone” 및 뉴스레터로 모든 플레이어에게 통지되었다._M#]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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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미통 독자 여러분, 그리고 『신생 FFXIV』 플레이어 여러분, 안녕하세요. 『신생 FFXIV』 프로듀서 겸 디렉터 요시다 나오키입니다. 드디어 5번째 칼럼이 되었습니다.
2010년 12월 10일, 『FFXIV』이라는 타이틀의 개발/운영체제가 변경되어 여러 가지 변화가 단숨에 시작되려고 했습니다. 해가 밝은 2011년 1월 1일에는 『FFXIV』의 혁신을 나타내는 “FUN”, “LIVE”, “REBOOT”, “REBUILD”라는 4개의 키워드가 여러분께 제시되고, 제1회 플레이어 앙케이트, 지금은 상례(?)가 된 수수께끼의 4행시가 공개되었습니다(한동안 “포에키치*”라고 불리는 연유가……).
(*역주 – 2ch에서, 요시다 나오키=시인=포엠 요시다(吉田)=포에키치(ポエ吉)라고 추측됨)
지금 메일을 다시 읽어 보면 이 키워드와 4행시 번역 의뢰, 앙케이트 준비는 2010년 12월 17일 메일로 종료해 있으므로, 아무래도 상당한 속도로 일을 결정하며 달려갔던 모양입니다.
실은 요시다는 이 무렵의 기억이 상당히 애매합니다(어이!). 기억력은 꽤 자신이 있습니다만, 마치 기억상실처럼 「언제, 무엇을 근거로, 어떻게 정했는가」가 지금 돌이켜보아도 떠오르지 않습니다(괜찮은 거야?). 4행시를 의뢰한 것부터 “세계를 붕괴시키고 신생(新生)한다”라는 아이디어의 골자는 이 시점에 이미 있던 것이 됩니다만, 이때는 틀림없이 “대폭의 사양 변경과 스토리 교체”가 전제이지, “신작을 다시 만든다”는 아니었습니다. 메테오 플롯을 휘갈겨 쓴 것도 있고, 으―음, 사람의 뇌는 신기하군요(남 일이냐).
말로 설명하기 어렵습니다만, 뭐랄까 “너무 집중해서 기억이 뇌 밑바닥으로 너무 많이 들어갔다”라거나 “기억에 새겨넣으려 했지만, 빛이 너무 강해서 전부 하얗게 날아갔다”라거나, 으―음. 비슷한 경험이 있는 분이 계신다면 꼭 메일 주세요(전부 맡기는 거냐).
자 그럼, 개발팀에 특별 휴가를 부여한 곳부터 “개발 코어 멤버”의 활동이 가속도를 붙이며 진행됩니다. 이 개발 코어 멤버는 인원을 조금씩 늘리면서 지금도 『FFXIV』의 기둥입니다. 그 활약은 추후 다시 소개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때의 코어 멤버는 몇 개 분야로 나뉘어서 철저한 조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첫 조사기한은 2010년 12월 28일 오후 8시까지.
한편, 요시다는 코어 멤버와는 정반대로 “최신 『FF』으로서 MMORPG를 만들었을 때 최저 필요한 게임 디자인”이라는 것을 병행하여 자료로 정리해 나갔습니다.
이 코어 멤버가 한 조사는 각 분야에 따라서 내용은 다르지만, 크게 나누면 아래와 같습니다.
· 현재 실장된 것 중 치명적인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메모리 파괴 등)
· 현재 실장된 것 중 명백히 작동이 “이상한” 것은 어째서인가?(유저 인터페이스(이하, UI)의 오동작 등은 왜 발생하는가)
· 현재 실장된 것 중 사양이 부족한 것은 “어째서”인가?(아이콘을 마우스 클릭할 수 없는 등…… 어?)
실제로는 분야마다 더 세세하고, 더 구체적입니다만, 『FFXIV』을 어떻게 바꾸어 나가든, 현재 상태를 올바르게 인식할 필요가 있기에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를 가장 먼저 추려내려고 했습니다. 이것이 개발 코어 멤버들의 역할이고, 그 외에는 새로운 UI 미들웨어 검토 등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요시다 쪽의 게임 디자인 작성은 아래와 같습니다.
· 월드는 어떻게 설계해야 하는지 상정(내부 월드레스, 완전 월드레스 등)
· 전투 시스템 상정(리얼타임? GCD? 타겟팅? 논타겟팅? 액션?)
· 파티 매칭은 어떻게 할지 상정(자동화? 전용UI? 플레이어 채팅 의존?)
· 레벨링의 기초방침/컨텐츠의 상정(퀘스트 성장? 던전 반복? 필드 사냥?)
· 길드 시스템/팩션의 상정(길드는 필요? 빛과 어둠의 속성 등은? 3도시 분할?)
· 어떠한 컨텐츠가 필요해지는지 상정(퍼블릭? 인스턴스?)
물론 이것 외에도 존의 수나 던전의 수, 컷씬의 퀄리티나 음성 유무 등등, 코스트는 별개로 하고 “『FF』의 최신작이 MMORPG가 된다면 최저한 이랬으면 좋겠다!”를 정리해 나갔습니다. 즉 “최저한의 이상”을 정리한 것이 됩니다.
이리하여 2010년 12월 28일 오후 8시, 개발 코어 멤버가 조사한 “현재 상태”와 요시다가 일단 도출한 “이상”의 비교를 개시했습니다. 방정식처럼 쓰면 “이상-현재 상태=문제”가 되어, 이렇게 함으로써 상당히 정확히(요시다의 디자인이 잘못됐다면 끝입니다만) 문제를 부각시킬 수 있습니다. 간신히 여기에서부터가 출발점.
요시다는 이제까지 이렇게나 이론을 세우며, 이렇게나 세세하게, 이렇게나 진지하게(!?) 일을 한 적이 없었습니다(없는 거냐). 일을 할 때의 이론은 전술한 내용과 대체로 다르지 않지만, 이번 『FFXIV』에서는 그 정도가 전혀 달랐습니다. “절대로 실패할 수 없는 압박”이나 “개발 코어 멤버들의 진력”이나 “정말 좋아하는 『FF』과 MMORPG 일”이라는 많은 요인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번 결과가 우연이었을 가능성도 많이 있습니다(웃음).
그러나 이때에 한 “이상-현실=문제”라는 사고방식은 어떠한 분야의 일에서도, 또한 자기 진단에도 쓸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본래는 어떻게 해야하는 지를 생각하고, 현재 상태를 올바르게 분석하고, 하나씩이라도 개선하면 느리기는 해도 골을 향해갈 수 있습니다. 당시, 어렴풋이 “결국, 당연한 일을 하는 것뿐이지”라고 생각함과 동시에 “당연한 것이 가장 어렵다”라고도 절실히 느꼈습니다.
자아, 문제는 다 모았다! 당연한 것을 열심히, 차근차근 하자!라고 맹세한 28일 오후 11시. 잘 보면 분류된 “문제”의 수는 10000개 이상이므로, 그 이상(理想)과의 갭에 아연해 요시다는 그 밤부터 40도의 고열이 났습니다(웃음). 그래서는 깜짝 놀라서 운석 하나나 두 개쯤은 떨어뜨리고도 싶어지지요. 「가라, 달라가브(※), 꺼림칙한 기억과 함께!」(끝맺음이 표절이냐). 다음에 계속.
※위성 달라가브…… 『FFXIV』의 세계인 “에올제아”에 과거에 존재했던 달의 위성. 『구 FFXIV』 시대에는 아직 에올제아의 달 주위를 돌고 있었으나, “메테오 계획”으로 낙하를 개시. 지상 격돌 직전에 달라가브 내부에 봉인되어 있던 만신 바하무트가 출현. 그로 인하여 “에올제아”는 한 번 멸망을 맞이했다. 이 재앙을 제칠영재(第七霊災)라고 부른다. 그 모습은 이쪽(“시대의 종언” 트레일러 http://sqex.to/9Ea )_M#]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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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미통 독자 여러분, 『신생 FFXIV』 플레이어 여러분, 안녕하세요. 『신생 FFXIV』 프로듀서 겸 디렉터 요시다 나오키입니다. 6번째 칼럼을 전해 드립니다.
『FFXIV』의 체제 변경이라는 격동의 12월을 빠져나와서 맞이한 2011년 1월 1일. 고열에 시달리면서도 요시다는 자택의 코타츠에 혼자 달라붙어서 노트PC와 담배와 커피를 풀 가동해 막대한 “『구FFXIV』 문제 리스트” 내용을 자세히 조사했습니다. 보기 드물게 켜 둔 TV에서는 설날 스페셜 방송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요시다는 어쨌든 평소 TV를 안 봅니다. 이유는 단순한데, 볼 시간이 없기 때문입니다. 옛날은 드라마를 아주 좋아하고, 프로야구 중계 등도 1구 1구의 배구가 너무 좋아서 몇 시간이나 보고는 했습니다. 참고로 저희 아버지는 홋카이도 출신인데 순수한 타이커즈 팬. 철이 들었을 때부터 TV로 자이언츠를 보았던 저는 당연하게도 자이언츠 팬입니다(에가와 vs 카케후 화제로 서로 싸우는 나날).
이랬는데, 지금처럼 TV를 안 보게 된 것이 거의 14년 전 정도일까요. 당시는 정말 숨을 쉬는 것이 당연하듯이 일과 MMORPG를 플레이하는 것이 생활의 일부로 스며들고, 그에 따라 쫓겨난 것이 TV라는 오락이었습니다.
14년 전. 당시 재적했던 회사는 아주 작은 회사로, 요시다는 스스로 게임 기획을 세우고, 클라이언트에 세일즈를 하고, 예산을 세워서 디렉션하는, 그야말로 만능꾼처럼 일했습니다. 회사에 있는 시간은 평균 약 14시간으로, 일과 취미의 구별이 안 되는 워커홀릭 같은 생활입니다(지금은 더합니다만(웃음)).
그런 요시다를 딱하게 생각했는지, 아주 좋아하는 MMORPG를 “일을 위한 연구라 칭하고 회사에서 플레이하기 위해”서 사장은 개인 PC 반입(당연히 회사 네트워크에는 연결할 수 없습니다만)을 허락해 주었습니다!(이 어찌 엄청난 배려). 요시다는 자작PC를 조립해서 자기 책상에 두고 회사에서도 계속해서 로그인하면서 일을 하는 꿈같은 생활을 보냈습니다. 일심불란하게 키보드를 두드리며 일을 하면서 시야 한구석에서 게임PC를 감시하고, 레어 몬스터의 출현을 보면 빛의 속도로 조작하는 마우스와 키보드를 바꿉니다! 놓칠 줄 알고!?(이것이 “숨덕”이라는 것이죠)
그리 고 일이 끝나면 퇴근하는 30분간만 게임 세계에서 로그아웃하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곧장 다시 게임에 로그인. 길드 멤버가 이미 파티를 짰고, 요시다가 들어갈 자리만이 비어 있는 상태. 자신의 퇴근을 기다려 주는 친구를 많이 만들 수 있는 것은 MMORPG뿐일지도 모릅니다(웃음). Buff(강화마법 등)를 걸고 적을 찾아 싸움터를 달리는 사이, 요시다는 PC 앞에서 쟁반에 올려놓은 저녁밥을 먹고 있습니다. 플레이어끼리가 전쟁을 하는 게임의 경우, 적도 어딘가의 나라의 플레이어입니다. 적을 발견하면 즉시 쟁반을 내던지듯이 내려놓고 교전 개시. 적을 쓰러뜨리면 다시 식사를, 뭐, 취미란 정말로 무서운 것입니다(몇 번이나 쟁반을 엎었습니다만……).
이런 식으로 쓰면 「MMORPG는 무서운 게임이구나」라고 생긱하실 분도 계실지 모릅니다(이제 와서 수습이냐). 그러나 여러분도 “일이나 알바, 취미, 부활동에 몰두한 경험”은 많이 가지고 계실 겁니다. 매일 녹초가 될 때까지 부활동을 하고, 식사를 하면 바로 자고(오히려 식사 중에 잠듦), 일찍 일어나서 아침 연습을 나가고, 수업은 피로회복을 위한 수면시간으로 활용하고, 저녁부터 전력으로 연습……. MMORPG는 게임이라는 오락 중 하나인 장르이기는 합니다만, 어떤 의미로 “취미”도 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취미는 TV게임을 플레이하는 것입니다(맞선에서도 당당히 말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하는 것과 같은 레벨로 「취미는 MMORPG를 플레이하는 것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심오하며, 즐거움뿐만 아니라 괴로움이나 슬픔조차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또 하나의 자신이 살아가는 세계”로서 오래 즐길 수 있는 “오락”이며 “취미”도 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경험해 보지 않으신 분은 정말로 단 한 번이라도 좋으니 꼭 플레이해 보십시오. 그야말로 『신생 FFXIV』이 아니라도 상관없습니다!(야!)
『구 FFXIV』도 MMORPG로서 생을 얻었습니다. 전술한 대로 MMORPG의 세계라는 것은 즐거움만 있지 않기에 강렬한 추억도 되고, 동시에 자신의 다른 인생도 돌 수 있는 정도의 것. 그러나 그 이전에 그 세계가 오래 즐길 수 있을 만큼의 안정성과 재미가 있어야 비로소 “온라인게임 세계에서밖에 맛볼 수 없는 한 번 뿐인 순간”과 만날 수 있는 놀이이기도 합니다. 『FFXIV』은 “『FF』 넘버링 타이틀 중 최신작”이기에 『FFXI』이 그러했듯이 『FFXIV』도 그런 세계여야만 한다고 생각했습니다(『신생 FFXIV』도 이제 겨우 그곳을 향해서 아장아장 걷기 시작한 병아리 쵸코보 같은 상태입니다).
그러나 『구 FFXIV』은 “상정한 게임 디자인”에서 너무나도 동떨어진 상태가 되어 있어, 밝혀낸 문제 리스트를 1항목씩 조사하는 사이에 「이것은 정말로 한 번 부수어 버릴 정도로 고쳐 만드는 레벨이 아니면 어떻게도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라는 생각이 스치기 시작합니다.
고열로 멍하니 담배를 피우며, 평소는 좀처럼 보지 않는 TV로 문득 눈을 돌리니 무언가 「2012년에 세상이 끝난다」라거나 「마야력의 신비가 드디어 밝혀진다!」라는 문자가 춤추고 있습니다. 세계붕괴……6번째의 절멸……. 「어라라, 이것은 혹시!?」라고 생각했을 때 다음으로 이어집니다!_M#]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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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미통 독자 여러분, 『신생 FFXIV』 플레이어 여러분, 안녕하세요. 『신생 FFXIV』 프로듀서 겸 디렉터 요시다 나오키입니다.
2011년 1월 1일, 요시다는 감기 때문인지, 쇼크 때문인지, 고열을 내면서도 코타츠에 파묻혀서 노트PC를 열고 『구 FFXIV』의 “문제점 리스트”와 격투하고 있었습니다. 재떨이 4개 정도에 넘쳐나는 담배꽁초(하루 50개비 정도 소비하는 헤비 스모커입니다)와 갈색으로 변색된 커피 컵을 본체만체하고 정말로 보기 드물게 정월 TV 특별방송을 바라보며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만, 그때 눈에 들어온 “2012년 세상 멸망설”.
그 방송의 주요 내용은, 고대에 만들어진 마야력은 서력으로 계산하면 2012년 12월 22일로 끝나며, 이것이 인류의 멸망을 예언하는 것이다!(키바야시 풍으로)라는, 흔히 있는 “학술적인 것처럼 보여서 마음대로 해석하여 자못 리얼리티가 있는 것처럼 전하는 것이, 실은 버라이어티이다”라는 것 같은 것이었습니다.
「흐응~, 2012년으로 이 세상은 끝나는 건가. 그 전에 확실히 『FFXIV』을 고치지 못하면 노력한 의미가 없어지겠지」라며 반쯤 히죽대며 그 방송을 보고 있었습니다만, 그 인류멸망의 원인 예측 중에 “운석이 날아와서 인류는 멸망한다”를 보았을 때에 「아아, 메테오구나」라고 반사적으로 생각했습니다.
「으음…… 어차피 세계를 다시 만든다면 요시다 스스로 애착이 있는 MMORPG이기에 정말로 그 세계가 멸망한다는 시나리오는 강렬한 임팩트를 낼 수 있을지도. 게다가 그것은 『FF』답게 운석(메테오)에 의해 발생한다…… 그리고 재생되는 세계! 라는 것은 괜찮을지도 몰라!」(중2적 발상)
『FFXIV』의 세계인 “에올제아”에는 달 옆에 붉은색 위성이 돌고 있고, 확실히 그것이 그래픽으로 밤하늘에 표현되어 있던 것도 이 아이디어에 박차를 걸었습니다(이 당시는 아직 이 위성에 명칭은 없었습니다(※각주로 주석)).
다른 MMORPG에 비해 여러 가지로 문제나 결점이 많았던 『구 FFXIV』입니다만, 게임 안 세계 전체를 사용하여 “세계는 멸망한다, 그 피할 수 없는 절망감과 싸운다”라는 것은 “다른 게임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떤 의미로 메타적인 전개이기도 합니다.
멸망의 원인이 자기들이 사는 행성으로 낙하해 오는 위성(메테오)이며, 게임 세계 안에서 시시각각으로 낙하해 오는 그 모습이 보인다…… 자신들은 그것을 저지하려는 빛의 전사이다. 그러나 이미 현실 세계에서는 『FFXIV』의 신생이 발표되어서 멸망을 피할 수 있는 운명이 아닌 것은 알고 있다.
이러한 세계의 종말관은 “『FF』다운 전개”라고도 생각했습니다.
「좋아, 저 위성을 에올제아로 떨어뜨리자! 그것으로 세상은 멸망하고, 그 후 새로운 세계가 재생된다……. 게다가 이 위성이 패치에 의한 업데이트로 몇 달마다 지표로 다가오면 리얼타임으로 멸망을 향해 가는 연출도 가능할 듯하다. 하지만 잠깐…… 눈에 보이는 만큼 단순히 그 메테오가 낙하하기만 해서는 너무 재미없다. 역시 반전은 필요한가…… 낙하하는 메테오…… 둥근…… 공…… 알…… 알? 안에서 무언가 태어난다……?」
이리하여, 실은 정말로 고작 이것에서만 “에올제아 세계에 달의 위성 달라가브가 낙하를 시작한다. 그러나 충돌 직전의 달라가브에서는 봉인되어 있던 바하무트가 튀어나와 세상은 그 메가플레어로 다 타 버린다. 그 후, 세계는 수수께끼의 재생을 이룬다”라는 『구 FFXIV』의 운영 내용의 큰 방침이 정해졌습니다.
「그렇게 간단한 즉흥 아이디어냐!」라고 게이머 여러분은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지만, 아마도 이 게임 업계에서 일하는 분의 대부분이 이런 순간적인 생각에서 파생한 “망상”으로 움직여 게임을 만들고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아니라면 죄송합니다). 그리고 포인트입니다만, 이러한 “발상에서 발전한 망상”은 누구든 할 수 있는 것이 굉장하고, 반대로 곤란한 것은 그 망상을 진심으로 현실로 이루고자 하느냐 아니냐에 있습니다.
「요시다는 굉장하지, 에헤헤!」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게임 디자이너나 게임 기획이란 실은 일로써 업무경험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고, 오히려 얼마나 게임을 알고 있고 얼마나 진지한지 아닌지가 아주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도 초등학생 때 “만약 도라에몽이 정말 있다면……”이라고 상상하거나 친구와 이야기한 추억은 없으신지요?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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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라에몽에게 어떤 도구를 꺼내 달라고 해야 하는가?
- 만약 도구를 하나밖에 못 꺼낸다면 무엇으로 할 것인가?
- “만약에 박스”가 최강은 아닌가?(그렇지만 노비타(진구)는 늘 실패한다……)
- 목욕 중인 “시즈카(이슬이)”네 집으로 마음대로 이어지는 “어디든지 문”도 매력적이다
- 통과 후프로 은행 금고실로…… 그나저나 그것은 어디까지 “빠져나갈” 수 있을까?
- 실수해도 되돌릴 수 있는 “타임머신”이 좋은가? 타임 패트롤에게 잡힐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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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 자 그럼, 그 당시, 어느 정도까지 이 “망상”이 부풀어 올랐을까요. 대부분의 경우, 도중에 「바보 같아! 정말로 도라에몽이 있으면 이렇게 고민하지 않지!!」라며 제정신으로 돌아옵니다. 다만, 사람에 따라서는 완전히 이 공상이나 망상을 즐기며 왠지 모르게 만족해서 “재미있었다”고 느끼지는 않았을까요.
그리고 이 공상이나 망상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며 함께 즐기고 싶다고 생각했다면, 그 사람은 게임 일에 굉장히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거기 당신, 어떤가요?
그런고로, 『신생 FFXIV』에서는 「나야말로!」라는 개발자를 모집하고 있습니다. 특히 플래너직(몬스터 기획에 자신있는 사람)을 강력하게 모집 중입니다. 경험은 그다지 신경 쓰지 않습니다. 개발 경험보다도 「게임이 삼시 세끼보다 좋고, 게임 실력에 자신 있으며, 알바부터라도 좋다!」라는 정도의 분을 모집하고 있습니다. 자세한 것은 조만간 리뉴얼 예정인 리쿠르트 페이지를 참고해 주세요. 싱긋.(라며 공상과 망상의 끝에 인재모집이 있다는 끝맺음?)
FFXIV 자랑할 수 없는 뒷이야기 시리즈 ①
당시 달라가브에는 이름이 없어서 메테오 플롯에 맞추어 갑작스럽게 이름이 정해졌다. 일본어명은 달라가브이지만, 영어명은 “Dalamud(달라문드)”로, 실은 Bahamut(바하무트)를 뒤튼 것이었습니다._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