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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M_「赤과 黑②」 (클릭해서 펼치기)|가리기| 5
요나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한다. 오빠로서 거짓 없는 마음이었으나 현실은 만만하지 않았다.
저축이 전혀 없지는 않았다. 모친의 사후, 부친의 편지와 함께 소중히 보관되어 있던 어느 정도의 현금을 발견했다. 만약을 위한 대비로서 니어는 그 돈에 손을 대지 않고 두었다. 아마도 모친도 그리 생각하고 보관해왔으리라.
큰 금액은 아니었으나 급할 때 쓸 수 있는 현금이 있다는 사실은 마음 든든했다. 그래서 진통제가 고액이라는 말을 듣고도 어떻게든 될 거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진통제는 잘 들었다. 기침과 미열은 지속되었으나, 흑문병의 기침은 원래 마른 가벼운 기침이다. 환절기 기침처럼 잠을 잘 수 없을 정도로 심하지 않다. 통증만 억제할 수 있으면 몸의 부담은 훨씬 가벼워진다.
문제는 약을 계속 먹어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약이 떨어지면 가차없이 통증이 덮쳐온다. 그래서 적지 않은 돈을 치르고 약을 계속해서 사야만 한다. 저축은 금세 바닥났다.
「오빠……벌써 나가?」
요나가 졸린 듯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소리를 내지 않도록 준비했으나 기척을 느끼고 일어나고 만 것이리라.
「오늘은 젠마이를 캐러 갈 거라서 일찍 나가야 해. 요나는 아직 자도 돼」
「무서운 양이 있는 곳까지 가?」
요나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젠마이는 북쪽 평원에 많이 난다. 단, 그곳은 마물의 모습이 빈번하게 확인되는 곳인데다가 야생 양도 다수 생식한다.
「미안해. 요나가 병들어서 오빠는……」
「걱정하지 마」
니어는 요나의 말을 가로막고 웃어보인다.
「양이라면 오빠도 지지 않아. 작년에 양고기를 갖고 온 적이 있었잖아?」
애초에 그때는 마을 어른도 있었고, 니어가 쓰러뜨린 양은 덫에 걸려 이미 약해져 있었다.
「오늘은 젠마이 채취이지만, 조만간 요나에게 양고기를 먹게 해 줄게」
요나를 안심시키기 위한 거짓말만도 아니다. 1년 전보다 완력도 붙었고 발도 빨라졌다. 제대로 된 무기만 있으면 이제 양 정도는 사냥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 제대로 된 무기를 손에 넣는 일이 가장 어려운 문제였지만.
「그럼, 다녀올게」
조심해, 라며 손을 흔들자마자 요나가 다시 기침을 했다.
평원으로 가기 전에 남문(南門)으로 갔다. 이 시간은 아직 마을 사람 대부분이 잠자리에 있을 시간이라 상점이 모이는 거리에도 사람 모습은 없다. 쥐죽은 듯 조용한 거리에 자기 발소리만이 울렸다.
이윽고 물레방아가 돌아가는 소리와 암탉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닭을 키우는 부인이 달걀 수집을 하고 있을 시간이라는 예상은 맞았다.
「안녕하세요」
니어는 무심코 풀숲 안의 알을 밟지 않도록 조금 떨어진 곳에서 말을 걸었다.
「안녕, 니어. 오늘 아침은 일찍 나왔구나」
「저, 만약 무언가 일이 있으면……」
요나의 약값을 벌기 위해 하나라도 더 일이 필요했다. 그래서 길가는 마을 사람을 붙잡고는 무언가 일이 없는지 묻기가 습관이 되었다.
「미안하구나. 오늘은 일손이 충분해서 부탁할 일이 전혀 없어」
닭을 키우는 부인이 미안한 듯이 말했다. 애초에 부부 둘이서 보살필 수 있는 정도의 닭밖에 기르지 않았다. 이 주변에 나는 풀이나 땅의 벌레로 기를 수 있는 닭의 수는 그리 많지 않다. 닭의 수를 늘리면 일부러 모이를 사서 길러야 한다. 닭을 키우는 부부는 그렇게 할 수 있을 정도로 풍족하지 않았다.
「그렇지. 해안 마을에 갈 일이 있으면 조가비를 주워다 주지 않겠니」
「조가비?」
「간 조가비를 닭에게 먹이면 좋은 알을 낳는대」
「그럼 무언가 심부름을 부탁받으면 주워올게요. 당장은 안 되겠지만」
「물론이지. 급한 게 아니니까 겸사겸사면 돼」
해안 마을은 볼일 하나 때문에 가기에는 멀다. 게다가 그 마을은 니어에게 탐탁지 않은 곳이었다. 단 한 번 가 보았을 뿐이지만 그 마을에는 불쾌한 기억밖에 없다…….
다시 상점이 늘어선 거리를 달려 북문으로 향한다. 아직 마을 사람의 모습은 없다. 평소라면 2명 있을 북문의 문지기도 한 사람밖에 없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무언가 일이 없는지 물어보았으나 문지기는 곤란한 듯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 대신 여기를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무언가 일이 없는지 물어봐 주지. 돌아오는 길에 다시 들러라」
「고맙습니다」
「너무 기대는 하지 말고」
문지기가 그리 못을 박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이 마을 사람들은 누구나가 다정하지만, 동시에 누구나가 가난하다. 다른 마을에서라면 닭 모이가 될 법한 깨진 밀도, 낚시 미끼로 쓸 법한 빈약한 민물고기도 이 마을에서는 귀중한 식량이었다.
식량만 부족하지 않았다. 일자리도 극단적으로 적었다. 사람을 고용할 정도의 재력을 지닌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비교적 여유가 있는 마을 사람이라도 바느질이나 수선 삯을 치르는 것이 고작이었다. 자기 가게를 갖고 있는 사람과 문지기를 제외한 성인 남자는 다른 곳으로 일하러 갈 수밖에 없다. 옛날에 니어의 아버지도 그런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이 니어에게 줄 「일」은 오히려 베풀어 주는 것에 가깝다. 그들은 잔돈이나 먹을 것과 교환할 수 있는 일을 일부러 찾아내 주고 있다. 이 이상 마을 안에서 수입을 얻기가 어렵다는 사실 정도는 알았다.
그렇다고 해도 니어는 아직 15살, 다른 마을로 간다고 해도 고용해 줄 연령이 아니다.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뼈저리게 했다. 제대로 된 돈을 벌 수 있게 되고 싶다. 이대로라면 약값은커녕 내일 밥조차 굶게 되고 만다…….
반나절 걸려 젠마이를 캐서 마을로 돌아왔다. 문지기는 약속대로 북문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말을 걸어 주었으나, 니어의 손을 빌리고 싶다는 사람은 없었다고 한다.
데보루에게 상담하러도 갔다. 주점에서 노래하는 데보루는 마을의 정보통이기도 하다. 마을 사람들이 지혜를 빌리러 포포루에게 가듯, 데보루는 그들에게 있어 푸념을 늘어놓거나 고민을 털어놓는 상대였다. 그래서 누가 일손을 필요로 하는지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은 데보루도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저, 니어. 마침 집을 찾고 있는 할머니가 있는데. 먼 곳에서 살던 아들 부부가 돌아온다고」
「데보루씨, 그것은……」
「집을 팔면 당장은 버틸 수 있어. 도서관에는 방이 남으니까 너희 두 사람이 잘 곳 정도는 어떻게든 돼」
집을 파는 일은 생각한 적도 없었다. 낡고 작은 집이기 때문에 가치는 뻔하지만, 그래도 요나의 약값은 된다. 만약 약을 살 수 없게 되면 어쩌나 하는 불안에서는 해방된다.
「고려해 볼 생각은 없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옳음은 알고 있었다. 저축은 이미 바닥났다. 집을 팔고 포포루에게 부탁해서 도서관의 방에서 생활하는 것이 가장 좋다.
머리로는 알았지만 끄덕일 수 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병약해서 집안에서 지내는 일이 많았던 요나에게 그 집은 특별한 장소다. 무엇보다 돌아가신 모친과 이어진 단 하나의 장소이기도 하다. 모친의 옷도 소지품도 약값 때문에 떠나보내고 말았다. 유산다운 유산이 남지 않은 지금, 차마 집까지 팔 수는 없었다.
「저는, 역시……」
니어는 그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데보루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했던 듯하다.
「알았어. 역시 그렇지」
「죄송합니다. 모처럼 저희를 배려해서 말씀해 주셨는데」
「아니. 너라면 그렇게 대답하지 않을까 싶었어. 나야말로 미안해」
니어는 무거운 문을 열고 주점을 뒤로했다. 오늘은 더 이상 일이 없고, 내일 예정도 결정되지 않았음을 생각하자 마음이 어두워졌다.
집으로 돌아가는 도중, 젊은 어머니가 「그쪽으로 가면 안 돼」라며 아이를 잡아끄는 모습을 보며 점점 더 우울해졌다. 마을의 어머니들이 자기 자식에게 니어의 집 근처에서 못 놀게 함은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그들은 요나의 흑문병이 자기 아이에게 감염되지 않을지 두려워했다.
물론 흑문병이 감염되지 않는다는 지식은 마을 사람 누구나 안다. 그래서 노골적으로 니어를 피하지 않으며 지금까지와 똑같이 대해준다.
하지만, 그래도 마을 사람들은 불안한 것이다. 흑문병은 감염되지 않는다고 하나, 감염되기 어려울 뿐이지는 않은가. 사람 대부분에게 감염되지 않았다고 해도 특정 사람에게는 감염되는 것이 아닌가. 원인을 알 수 없는 이상 절대라고 단언할 수 있는 사실은 하나도 없다.
돌을 매단 것 같은 발을 끌며 걷던 니어는 퍼뜩했다. 아침에 나가기 전에 밭의 작물에 물 주기를 잊고 있었다.
부족한 현금은 모두 요나의 약값으로 사라진다. 적어도 먹는 것 정도는 사지 않고 해결하려고 했다. 모친이 살아 있을 때는 뜰을 밭으로 썼기 때문에 불가능하지 않을 터이다. 잡초를 뽑고 흙을 갈아엎고 씨앗을 조금 겨우 얻어 심었다.
늦지 않았기를 기도하며 달린다. 필사적으로 땅을 박차고 무너진 담을 뛰어넘는다. 그러나 뜰에 들어선 니어는 자기도 모르게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간신히 잎이 나기 시작한 모종은 모두 시들어 있었다. 이 땅에서 작물을 기르기는 쉽지 않다고 들었지만, 설마 겨우 한 번 물주기를 잊었다고 시들어 버릴 줄이야.
되돌아보면 모친은 신경질적일 정도로 물주기에 신경을 썼다. 닭을 돌보는 일은 니어에게 맡겨도, 밭에는 손대지 못하게 했다. 그런 모친조차 수확 전에 작물을 말려 죽이는 일이 적지 않았다.
빈곤한 마을에서 아이 단둘이서 살아가기는 결국 무리였을까. 역시 집을 팔 수밖에 없는 것인가. 집 안에는 더 이상 돈으로 바꿀 수 있는 물건 따위는 남아있지 않다…….
모든 희망이 사라졌다고 생각한 순간 그 생각이 스르르 가슴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왔다. 아직 팔 것은 있다. 그렇다, 단 하나 남아있다.
일어서려 했지만 할 수 없었다. 지독히 무거운 것이 등에 올라타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어서 집으로 들어가서 요나에게 밥상을 차려 주고, 내일 준비를 하고……해야 하는 일이 몇 가지나 머릿속에 떠올랐지만, 그래도 니어는 움직이지 못했다.
6
「오빠, 오늘은 어디에 가?」
몸차림으로 멀리 나감을 눈치챈 요나가 불안한 듯 올려다본다.
「해안 마을로 심부름하러 가」
입을 다문 채 요나가 니어의 웃옷 자락을 잡았다. 무언가를 눈치챘을지도 모른다.
「조가비를 주워와 달라는 부탁을 받았어. 닭에게 먹이면 좋은 달걀을 낳게 된대. 갈아서 먹인다고 했지만, 그런 것을 닭이 먹으려나」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어제 닭을 키우는 부인과 이야기하기를 잘했다. 전부 사실이다. 그래도 요나는 아직 웃옷 자락을 놓으려 하지 않는다.
「심부름, 그것뿐이야?」
「아니, 물론 다른 것도 부탁받았지. 멀리까지 나가는데 조가비 모으기 돈만으로는 수지가 안 맞잖아」
이번에는 거짓말을 했다. 다른 것은 아무것도 부탁받지 않았다.
「꽃집 아주머니가 구근을 사다 달래. 왜, 튤립 구근은 해안 마을에서밖에 안 팔잖아」
너무 많이 떠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들어도 멈출 수 없었다. 거짓말을 계속해서 하지 않으면 끝까지 숨길 수 없을 듯한, 요나에게 모두 들키고 말 듯한, 그런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소재 가게 아저씨는……」
「오늘 밤은 요나, 혼자야?」
고개를 푹 숙이는 요나를 보고 안도했다. 들킨 것이 아니었다. 요나는 섭섭해하던 것뿐이다. 반년 전의 집 지키기를 떠올리고 불안해진 것이리라.
해안 마을은 멀다. 게다가 마물이 출몰한다는 남쪽 평원이 도중에 있기 때문에 해가 높이 뜬 시간에 밖에 이동할 수 없다. 아무리 서둘러 용무를 마쳐도 그날로 다녀오기는 곤란하다.
「심부름 많이 있으면 금세 돌아올 수 없지?」
「저번에도 혼자서 집 잘 지켰잖아? 그때보다 요나는 더 컸으니까」
집 지키기도 중요한 심부름이라고 타이르자 요나는 겨우 웃옷 자락을 놓았다.
니어는 불안한 듯한 얼굴로 전송하는 요나에게 등을 돌리고 뒤돌아 문을 닫았다. 돌아보지 않고 달렸다. 여기에서 멈추면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게 될 것만 같아 무서웠다.
숨이 막힐 때까지 계속해서 달리다 겨우 발길을 멈추었다. 돌아보아도 마을은 보이지 않는다. 걸으면서 호흡을 가다듬는다. 체력을 온존해 둘 필요가 있었다. 마물은 발이 빠르다. 충분한 거리가 벌어져 있을 때 발견해서 전력으로 달리지 않으면 따돌릴 수 없다.
대형 마물이 출몰하는 남쪽 평원은 이제 코앞이었다. 어디쯤에서 거리를 벌려야 하는지, 안전하게 쉴 수 있는 장소는 어디인지, 이전보다도 상황을 잘 안다. 그런데도 이전보다 훨씬 마음이 무거웠다.
처음으로 해안 마을로 심부름을 부탁받은 것은 반년 전이었다. 마을에 사는 사람에게 급한 편지를 전하고, 꽃집에서 튤립 구근을, 소재 가게에서 천연고무를 사 오는 일.
요나를 혼자 두기에 불안을 느끼면서 마을을 뒤로하고, 멀리 보이는 거대한 마물의 모습에 놀라고, 필사적으로 평원을 빠져나갔다. 처음으로 보는 바다는 아름다웠지만 마을 전체를 뒤덮은 비릿한 공기에는 넌더리를 냈다. 돌아다니는 동안에 머리카락과 피부가 지독히 끈적여 기분이 나빴다. 그것이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 탓이라고 가르쳐 준 사람은 꽃집 여자였다.
구근과 소재를 산 후, 편지를 전하기 위해 큰 집이 늘어선 한 모퉁이로 발을 들였다. 그곳은 길이 지독히 복잡한데다 건물에 가로막혀 전망이 안 좋다. 간신히 편지를 전해주기는 했지만 돌아가는 길을 알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시간대 문제인지, 원래 돌아다니기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만 살고 있는지, 지나가는 사람이 전혀 없어 길을 물을 수조차 없다. 어디를 어떻게 지나왔는지조차 모르게 되어, 니어는 눈앞이 캄캄했다. 걷다 지쳐 처음 보는 집 대문에 기대서 쉬었다.
『거기에서 뭐 하는 거냐?』
니어는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당황해서 대문에서 떨어졌다.
『이 근처 아이가 아니로군. 길을 잃었나?』
이제 길을 물어볼 수 있다는 생각에 안심했다. 그래서 남자가 대문을 열고 나왔을 때도 전혀 경계하지 않았다. 혼자 왔느냐는 질문에 솔직하게 끄덕였다.
남자가 히죽 웃었다. 뒷걸음질치려 했지만 팔을 잡혔다. 입을 막고 집 안으로 끌고 들어가려 했다. 도망치려 해도 움직일 수 없었다. 남자는 생각 외로 힘이 셌다.
『돈이 필요하지 않아?』
귓가에 속삭이는 목소리에 전신에 소름이 끼쳤다. 혼신의 힘으로 남자의 팔을 뿌리쳤다. 등 뒤에서 남자가 소리를 내며 웃었다.
『돈이 필요해지면 언제든 와라』
그 목소리로부터 도망치려 필사적으로 달렸다. 달리고 달리다 정신을 차리니 해안으로 나와 있었다. 그래도 남자의 목소리가 끈질기게 따라오는 듯해 니어는 계속해서 달렸다.
다행이 해안 마을에 용무가 있는 마을 사람은 많지 않았다. 설령 용무가 있다고 해도 무언가를 하러 가는 겸사겸사면 된다고 했다. 덕분에 반년 동안 잊고 있을 수 있었다. 그 불쾌한 사건도, 남자의 웃음소리도.
그런데 다시 오고 말았다. 해안 마을이 보이기 시작하자 니어의 발걸음은 자연히 무거워졌다. 또 길을 잃었으면 좋겠다. 도착할 수 없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목적인 집은 마을 입구에서 가까운 곳에 있었다. 얄궂게도 이번에는 헤매지 않았다.
새삼 올려다보니 멋진 집이었다. 유복한 남자인 것이리라. 웃음소리가 귓가에 되살아나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발을 들이고 말면 돌이킬 수 없어진다.
마음 어딘가에서 되돌아갈 구실을 찾고 있는 자기를 깨닫는다. 전부 내던져 버려라, 이제 됐다, 이제 충분하다, 이 이상 짊어질 수 없다, 라는 목소리가 마음속에서 들린다.
안 된다. 여기에서 되돌아가면 요나는 어떻게 되지?
이 5년간 죽 요나가 마음의 지주였다. 내일 요나에게 무엇을 먹일지 고민하고 있으면 먼 미래의 불안으로부터 눈을 돌릴 수 있었다. 요나의 간병에 쫓길 때는 어머니의 부재를 잊을 수 있었다. 요나가 있었기 때문에 아직 어린 자기가 지금까지 어떻게든 버틸 수 있었다.
「요나를 위해서야」
목소리를 내자 마음이 굳어졌다. 니어는 조용히 대문을 밀었다.
7
요나는 소강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통증이 사라지고 다소 식욕이 돌아오자 뜰에 풀어놓은 닭에게 모이를 주거나 도서관에 놀러갈 수 있게 되었다. 기침은 지속되었지만 다행이 피를 토하는 일은 없었다.
며칠에 한 번 니어가 해안 마을로 외출할 때만은 요나는 외로움과 불안을 토로하였으나, 그 외에는 웃으며 지내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것으로 충분했다. 요나의 약값과 교환해 자기 안에서 무언가가 무너져 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해도.
나는 요나의 미소를 되찾았다. 지금도 이렇게 요나를 지키고 있다. 그뿐이면 충분하다. 그 사실만 있으면 자신을 용서할 수 있다…….
니어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걷고 있었다. 지쳤다. 아무 생각도 안 하고 자고 싶었다. 해안 마을에서 돌아올 때는 언제나 그렇다. 가는 길보다 돌아오는 길이 더 괴롭게 느껴지게 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니어는 누군가 이름을 부른 기분이 들어 멈추어섰다. 데보루다. 어느새 분수 앞으로 와 있었다.
「왜 그래? 몸이라도 안 좋아?」
「생각을 좀 하느라」
「그럼 됐어. 오. 뒤로 묶었네」
「방해가……되어서」
이제까지 아무렇게나 뒤로 묶기만 했던 머리카락을 꽉 묶어 올리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었다. 그때 이후로 계속.
「그렇구나. 잘 묶었네」
데보루는 감탄한 듯이 말하고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니어의 머리카락으로 손을 뻗어온다. 깊은 의미가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님은 알았다. 알았지만.
「니어?」
정신을 차리니 데보루의 손을 힘껏 뿌리치고 있었다. 머리카락에 닿은 순간 어젯밤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무슨 말이든 하지 않으면 데보루에게 의심받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해안 마을에 다니게 되고부터 머리카락을 타인이 만지는 것뿐만 아니라, 자기 어깨에 머리카락이 닿는 것조차 불쾌해 견딜 수 없다. 아무리 해도 떠올리고 만다. 그 남자가 난폭하게 머리카락을 잡았을 때를, 그 후에 강요당한 일을. 잊으려 노력해도, 그것은 오감 하나하나에 새겨진 것처럼 끈질기게 되살아나서는 니어를 괴롭혔다.
차라리 머리카락을 뿌리부터 밀어 버리고 싶다는 생각조차 했지만, 그렇게 하면 주위에서 이유를 물으리라. 대답을 잘할 자신도 없었고, 분명 물어볼 때마다 그 남자를 떠올리리라. 그래서 머리카락이 어깨나 목에 닿지 않도록 묶기만 했다.
「미안, 미안. 모처럼 묶었는데 풀어지면 짜증나지」
죄송합니다, 라고 간신히 한 말은 지독히 잠겨 있어 자기 목소리 같지 않았다.
「아, 그렇지」
데보루는 다시 현을 튕기려다가 기억난 듯이 말했다.
「포포루가 불렀어. 집으로 가기 전에 들러 봐. 그리고……」
「그리고?」
「너무 무리는 하지 마」
니어는 애매하게 미소 지었다. 지친 모습을 보고 걱정해 주었을 뿐, 데보루는 아무것도 모른다. 알고 있다면 이렇게 마음 써 주지 않을 터이다. 마치 더러운 것이라도 보는 듯한, 멸시하는 시선으로 보았을 것이다.
포포루도 같은 말을 하는 것이 아닌가 했으나, 아니었다. 포포루는 몸이 안 좋은지는 묻지 않았고, 무리하지 말라고도 말하지 않았다.
「일을 부탁하고 싶은데」
그 담담한 말투에 구원받는 기분이었다. 지금은 걱정해 주거나 동정받기보다도 오히려 무미건조하게 대해주는 편이 고맙다.
「다만, 굉장히 위험한 일이야. 이런 일을 네게 부탁해도 좋을지……」
포포루가 망설이며 말을 끊었다.
「어떤 일인가요」
「마물 퇴치야」
남쪽 평원에서 본 검고 거대한 모습을 떠올렸다. 쓰러뜨리기는커녕 혼자서는 움직임을 저지하기조차 제대로 못 할 모습. 그래도 이 이야기를 거절할 마음은 들지 않았다.
「물론 너 혼자가 아니야. 다른 도시나 마을에서 3명 정도 와 줄 거야」
니어를 포함해 4명. 그 인원으로 마물 소굴을 제거하는 일이라고 한다. 북쪽 평원에 출몰하는 마물은 그곳에서 생겨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다행이 그것들은 소형으로, 초보자라도 충분히 제거할 수 있다고 포포루는 설명했다.
「다른 어른도 함께 있으니까 그다지 강한 마물은 아니지만……」
니어보다 오히려 포포루가 결심이 서지 않는 모양이었다. 상대가 마물인 이상 위험함에 변함은 없다. 다소의 부상은 각오해야 하고, 운이 나쁘면 목숨을 잃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버려 둘 수는 없잖아요?」
북쪽 평원에 마물이 늘어나면 마을에도 위험이 미친다.
「그렇다면 제가 갈게요. 게다가 요나의 약값도 벌어야 하고요」
위험은 마다하지 않는다. 해안 마을에는 안 가도 되는 일이라면.
「그러면 네게 맡길게. 위험한 일이지만 그에 맞는 보수는 있으니까」
니어는 금액을 듣고 귀를 의심했다. 그 정도의 돈을 얻으려면 그 남자의 집에 몇 번 찾아가야 할까? 그 남자의 굴욕을 몇 번 견뎌야만 할까?
자신의 가치와 마물 퇴치 보수의 너무나 큰 차이에 아연했다.
「할게요. 위험해도 상관없어요」
「정말로 조심해야 한다」
포포루의 두 눈에는 슬픔이라고도 괴로움이라고도 할 수 없는, 더구나 동정과도 연민과도 다른 어두운 빛이 있었다. 그것을 보고 깨달았다.
포포루는, 그리고 아마도 데보루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값비싼 약을 사기 위한 돈을 어떻게 얻고 있는지. 그 대가로 무엇을 내놓고 있는지. 그것을 눈치챘기 때문에 위험해도 고액의 보수를 얻을 수 있는 일을 주선했다.
들켰다고 생각한 순간 수치심에 얼굴이 뜨거워졌다. 동시에, 평소와 다름없는 태도로 있어 주는 데보루와 포포루에게 감사했다. 어째서 멸시받을 것이라 생각했을까. 그들이 그런 태도를 취할 리가 없는데.
「포포루 씨, 고맙습니다」
그러나 포포루의 눈동자에서 어두운 빛이 사라지는 일은 없었다.
8
집합장소는 마을 북문이었다. 이 마을에는 외부인이 적기 때문에 거기에 있던 남자 2명이 자기와 같은 일을 의뢰받은 사람임을 금세 알았다.
그러나 그들은 설마 어린 소년 동행자가 있는 줄은 몰랐던 것이리라. 니어의 모습을 보자마자 눈썹을 찌푸리고 되돌려 보내려 했다.
「꼬맹이는 가라. 우리는 놀러 가는 게 아니야」
「알고 있어요. 그러니까……」
「돌아가. 꼬맹이가 죽는 꼴이라도 보는 날에는 꿈자리가 뒤숭숭할 거다」
어떻게 해야 그들이 동행시켜 줄까. 모처럼의 일을 잃고 싶지 않다. 니어가 물고 늘어지려 했을 때였다.
「뭘 옥신각신하고 있어?」
들은 적이 있는, 그러나 떠올리고 싶지도 않은 목소리가 들렸다. 돌아서서 확인할 것도 없이 그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왜 네가 여기에? 아아, 그렇군. 이 마을 사람이었나」
해안 마을의 남자였다. 왜 이 녀석이, 라는 의문은 남자가 들고 있는 검을 본 순간 풀렸다. 남자의 집에는 엄청난 수의 검이 놓여 있었다. 돈을 쏟아 부어 사모은 듯했다. 무엇이나 사람을 벤 흔적이 있는 검뿐이었다. 비뚤어진 성벽을 지닌 자는 수집벽 또한 비뚤어진 것이리라.
2명의 남자와 해안 마을 남자는 안면이 있는 듯했다. 대화의 구석구석에서 그들이 이렇게 일로 적잖이 함께한 적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아마도 남자는 수집품을 실용적으로 즐기기 위한 장소로서 마물 사냥을 의뢰받고 있는 것이리라.
「이 꼬맹이, 당신과 아는 사이인가?」
「아아. 잘 알지. 그렇지?」
해안 마을 남자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고 니어를 보았다.
「이 녀석이라면 방해는 되지 않을 거야. 다 큰 어른 남자를 밀쳐낼 정도의 완력도 있는데다 도망치는 속도도 상당하지」
처음 만났을 때를 말하는 것이다. 니어는 견디지 못하고 얼굴을 돌린다. 그러나 남자는 재미있어하며 끈질기게 얼굴을 들여다본다.
「계집애 같은 얼굴인 주제에, 이게 상당히 고집 센데다 참을성이 강해」
손도 발도 딱딱하게 굳어져 말을 전혀 듣지 않았다. 친한 척 어깨에 올린 손을 뿌리칠 수조차 없다.
「의외로 써 먹을만할지도 몰라. 나는 이 녀석이 마물을 보고 겁에 질려 엉엉 우는 꼴을 보고 싶기도 한데」
「당신이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데리고 갈까」
아무리 미워해도 부족한 남자. 그가 거들어서 동행을 허락받았다. 일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이 정도의 굴욕이 더 있을까?
「그 눈은 뭐야?」
아니, 짓누르는 정도의 힘이 아니다. 그런데 움직일 수 없었다.
「엉뚱한 생각 마라. 나는 그렇게 가르쳤을 텐데?」
낮은 목소리였다. 다른 두 사람에게는 결코 들리지 않을 속삭임이 미지근한 숨과 함께 귓불에 닿았다. 마치 독을 부어 넣고 있는 것 같아, 니어는 이를 악문다.
묶어 올린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는 손가락에 힘을 느꼈다. 그러자 가벼운 소리를 내며 머리카락이 풀어졌다. 남자가 웃으면서 떨어진다.
어서 머리카락을 다시 묶으려 했지만 잘되지 않는다. 니어는 떨어뜨린 끈을 주우면서 자기 손이 지독히 떨리고 있음을 깨달았다.
마물의 소굴의 위치는 평원과 마주 보는 산악지대로 추정되었다. 구불구불 구부러진 좁은 길 안쪽에 동굴이 있음은 전부터 알려져 있었다. 햇빛을 싫어하는 마물이 자리를 잡아도 이상하지 않다.
산길로 들어설 무렵이 되자 역시 긴장으로 손에 힘이 들어감을 느꼈다. 마을 어른들과 함께 양을 잡았을 때 이후로 검을 들기는 처음이다. 그때 든 검은 짐승을 쓰러뜨리기 위한 무딘 것이었지만, 이번은 다르다. 이 일을 위해 포포루가 빌려준 무기는 도서관 창고에 있던 오래된 한손검이었다.
니어는 사람을 벤 흔적이 어떤 것인지 몰랐으나, 어둡게 빛나는 칼날을 본 순간 여러 번 피에 젖은 검임을 직감했다. 그 검은 그런 위험한 물건이면서도 위화감 없이 손에 익었다. 마치 니어가 들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듯이.
「이상하게 눅눅한 바람이 부는군」
선두에서 걷던 남자가 고개를 갸웃했다. 듣고 보니 공기의 냉랭함이나 무거운 느낌이 비가 내리기 직전 같았다. 그러나 올려다본 하늘은 맑아 구름 한 점 없다.
「빨리 정리하고 돌아가자고. 비라도 내리면 귀찮아져」
동굴까지는 아직 멀었다. 자연히 걸음은 빨라졌다. 구름이 없어도 급속히 하늘 상태가 변하는 일은 있다. 그러나 그 예상은 빗나갔다. 급속히 나빠진 것은 날씨가 아니라 시야였다.
「안개!?」
습기를 머금은 바람은 짙은 안개가 나올 전조였던 듯하다. 어느새 하늘 색도 알 수 없을 정도의 안개가 주위를 뒤덮고 있었다.
「어쩌지? 돌아갔다가 다시 올까?」
「동굴로 들어가면 안개 따위는 상관없잖아」
그 남자가 어서 가자고 말하려 했을 때였다. 흰 안개 저편에 검은 그림자가 여럿 보였다.
「마물이다!」
순간적으로 돌아보자 등 뒤에서도 검은 그림자가 다가온다. 포위되었다.
「그렇군! 동굴에 마물이 자리를 잡은 게 아니야! 이 일대 전부가 마물의 소굴이다!」
동굴이 아니라도 햇빛만 차단되면 마물은 활동할 수 있다. 원래 산 주위는 일조시간도 짧다. 좁은 산길과 빈발하는 짙은 안개는 마물의 서식지로 충분한 조건을 갖추고 있었으리라.
온다, 라는 외침을 들었다. 검은 그림자가 눈앞으로 육박한다. 니어는 손에 든 검을 힘껏 내리쳤다.
칼날에서 전해지는 느낌은 둔하고 무겁다. 양을 잡았을 때의 감촉과 많이 닮았다고 생각했을 때였다. 붉은색을 보았다. 뜨뜻미지근한 액체를 뒤집어썼다. 피다. 요나가 토한 검은 피와 같은 냄새. 니어는 처음 보는 마물의 피에 당황했다.
그림자처럼 밖에 보이지 않는 마물이지만, 베면 짐승과 같은 감촉이 나고 붉은 피를 흘린다. 그러나 쓰러뜨린 후에 시체는 남지 않는다. 베인 마물은 검은 안개가 되어 형체를 잃고 검붉은 피 웅덩이만이 남는다.
마물이란 대체 무엇인가?
그러나 의문도 금세 사라졌다. 그럴 때가 아니었다. 소형이라 약하다고는 하지만, 마물의 수는 심상찮다. 아무 생각도 할 수 없게 되었다.
무아지경으로 검을 휘두르며 엄청난 피를 뒤집어썼다. 죽여도 죽여도 안개 저편에서 검은 그림자가 나타났다. 그 모습은 기묘할 정도로 인간과 닮았다. 머리가 있고, 손발이 있고, 직립보행한다…….
어느새 자기가 베고 있는 상대가 사람인지 사람이 아닌지조차 모르게 되었다. 혹시 자신은 마물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을 베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 진득거리는 붉은 액체는 인간의 피가 아닌가?
문득 정신을 차리자 낯익은 옷이 눈앞에 있었다. 해안 마을 남자다. 애용하는 검을 시험하는 데에 몰두했는지 니어가 바로 옆에 있는데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남자의 엷은 미소를 띠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머리에서부터 피를 뒤집어쓴 모습은 인간이라기보다 괴물 같았다.
바로 지금까지 자기도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으리라. 틀림없이 이 남자와 같은 표정으로 마물을 계속해서 죽이고 있었으리라. 마음 어딘가에서 살육을 재미있어하고 있었다. 3마리, 4마리, 연거푸 마물을 쓰러뜨릴 수 있게 되자 그런 자기가 자랑스럽게 느껴졌다.
괴물은 어느 쪽인가? 마물인가? 그렇지 않으면 자기들 쪽인가?
안개가 더욱 짙어졌다.
어느 정도 수의 마물을 쓰러뜨렸는지 이제는 짐작도 가지 않았다. 아직 머릿속이 마비되어 생각을 제대로 할 수 없다. 다만, 주변 일대의 마물 대부분을 제거했다는 확신은 있었다. 니어는 크게 숨을 내쉬고 온 길을 되돌아갔다.
큰 부상은 입지 않았으나 스친 상처나 타박상 종류는 피할 수가 없었던 듯하다. 몸 여기저기가 희미하게 쑤셨다. 손발에 튄 피는 완전히 말라 있어 움직일 때마다 당기는 듯한 기묘한 감각이 있었다. 스스로는 냄새에 익숙해져 버려 느껴지지 않지만, 분명 지독한 냄새가 나리라.
어쨌든 빨리 몸을 씻고 싶었다. 뛸 정도의 체력은 남아있지 않았지만 가능한한 빠르게 걸었다.
이윽고 시야에서 안개가 걷히고 남자 두 사람을 따라잡았다. 마을 북문 앞에서 니어를 되돌려보내려 한 두 명이다. 그들 중 한 명은 다리를 끌고 있고, 또 한 명의 왼팔은 이상한 방향으로 비틀려 있었다. 자기가 이 정도의 상처로 끝난 것은 어쩌면 기막힌 행운이었을지도 모른다고, 그들을 보며 생각했다.
니어의 모습을 보자 두 남자는 동시에 눈을 크게 떴다. 마물에게 당한 줄로만 알았으리라.
「너, 살아 있었냐!」
니어는 말없이 끄덕인다.
「그 녀석 말대로였군. 방해는커녕 팔팔하네」
대단하군, 이라고 말하던 남자는 기억난 듯이 안색을 바꾸었다.
「그 녀석은 어떻게 되었어? 함께 있던 게 아닌가?」
이번에는 고개를 옆으로 저었다.
「그렇겠지. 설마 그 정도의 수가 있을 줄은 몰랐어. 우리가 살아있는 것도 기적과 같지」
남자는 작게 한숨을 쉬고는 미안했다고 니어에게 사과했다.
「역시 데리고 오는 게 아니었어. 아이에게는 힘들었겠지」
「아니요……」
이로써 진통제를 사 줄 수 있다. 요나가 괴로워하지 않아도 된다.
「동생을 위해서니까요」
그렇다, 요나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한다.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아무리 위험한 일이라도, 아무리 더러운 행위라도.
「그러냐. 무엇보다 무사해서 다행이로군」
왼팔을 부상당한 남자는 오른손으로 니어의 등을 두드리며 돌아가자고 말했다. 니어는 한쪽 다리가 움직이지 않는 남자에게 어깨를 빌려주고 한동안 말없이 걸었다.
산길을 빠져나가서 주위를 경계하며 북쪽 평원을 가로질렀다. 여기에서 습격받으면 잠시도 버티지 못하지만, 날씨가 도왔는지 평원 어디에도 마물의 모습은 없다. 문득 남쪽 평원에서 본 거대한 마물을 떠올렸다. 그것에도 손발이 있고 직립보행을 했었다.
「사람과 마물이 그렇게 닮았을 줄은 몰랐어……」
어렸을 때는 「새카만 유령」이라고 불렀다. 처음으로 진짜 마물을 보았을 때는 그림자 같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마물과 인간을 연관지어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래? 그렇게 닮았었나?」
두 남자가 각각 고개를 갸웃한다.
「베면 피를 흘리고, 감촉도……」
「그렇게 말하자면 양이나 산양도 같잖아. 피를 흘리고 벨 때의 감촉도 마물과 비슷해」
두 남자는 이상한 생각을 하는 꼬맹이라며 웃었다. 아무래도 그들은 마물과 인간의 차이 따위는 생각해 본 적도 없는 듯하다.
「뭐, 실제로 인간을 베 보면 마물과도 양과도 다를지도 모르지. 이것만은 시험해 볼 수 없지만」
「실제로……」
피로 더러워진 자기 손을 본다. 적갈색으로 말라붙은 손바닥. 사람의 피라고도 마물의 피라고도 할 수 없는 색. 해안 마을 남자는 죽었다. 이제 두 번 다시 그 집에 갈 일은 없다.
「왜 그러지? 어디 아프기라도 한가?」
걱정스러운 듯한 물음에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니어는 자기 손에서 눈을 돌리고 고개를 흔든다.
「어서 집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2층 창에 붙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요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오늘도 요나는 웃는 얼굴로 맞이해 주리라.
이 이상 아무 생각도 안 해도 된다. 요나를 지킨다, 그 이외에는 무엇 하나. 뭐야, 간단하잖아…….
어깨에 올라가 있던 무언가가 가벼워진 듯한 기분이 들어 하늘을 올려다본다. 평소와 같은 푸르름 속에서 구름 한 조각이 바람에 흘러갔다._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