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정집에 실린 소설 해석.
이 소설은 게임 본편 시점보다 훨씬 과거 이야기이기 때문에 D엔딩까지 보았다 해도 배경 설정을 모르면 내용 이해가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니 세계관 설정(링크①, 링크②)부터 먼저 읽기를 추천.
※이 글에 링크는 걸어도 되지만, 본문을 직접 긁어서 퍼가지는 말아 주십시오.
n[#M_「그리고 아무도 없었다」|가리기| 나는 창도 문조차도 없는 방에 있었다.
그저 넓은 방이었다. 조명기구는 보이지 않지만 밝다. 천장 전체가 광원이 되어 있는 듯하다. 주위에는 나와 동년대인 사람이 있었다. 언뜻 보기에 인종은 제각각인 듯하다. 남자는 나를 포함해 9명, 남은 4명은 여자. 아직 의식이 몽롱한 듯한 사람도 있는가 하면, 이미 일어서서 몸단속을 하고 있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어째서인지 각자 옆에 책이 1권씩.
무슨 일이 있었지? 나는 어째서 여기에 있지?
약으로 잠들어 있었는지 현기증이 났다. 이럴 때는 갑자기 일어서지 않는 편이 좋다. 주위 상황을 확인하면서 총으로 손을 뻗으려 했다. 그러나 그것은 예상대로 사라져 있었다.
납치되었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는 상황에서 깨어난 이상 총화기류가 몰수되어 있을 줄은 알았다. 당연하다. 다만, 옷소매에 꿰어 넣은 와이어나 구두 바닥에 숨긴 폭약류까지 깨끗이 압수되었다. 하나도 남김없이. 그로써 깨달았다. 나는 내가 소속된 조직에 사로잡혔다.
이렇게 될 예감은 있었다. 「극비 임무」라는 수상쩍은 이야기를 제안한 시점에서 감이 왔다. 덧붙여서, 이것은 명령이 아니라고 했다. 받아들일지 말지는 자유라고.
고액의 보수를 제시받았을 뿐 아니라, 임무 종료 후 퇴역까지 약속되었다. 즉, 이 거지 같은 생활과 이별할 수 있다고 했다. 이에 아니라고 대답할 녀석이 있다면 그 녀석은 제대로 된 멍청이가 틀림없다. 혹은 맛이 간 살인광이거나.
물론 이 정도의 조건을 제시하는 것이니 정당한 임무일 수 없다. 아마도 100명 중 99명, 아니, 1000명 중 999명까지가 살아서 돌아갈 수 없다든가. 애초에 보수 따위는 치를 생각이 없기에 제시할 수 있는 조건이었으리라.
그 정도는 알았다. 알았던 주제에 이 꼴이다. 무심코 자조적인 웃음이 떠오른다.
갑자기 옆에서 말을 걸었다. 나보다 약간 연하로 보이는 남자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같은 나라 사람이 아니다. 나는 묵묵히 고개를 옆으로 흔든다. 그것만으로 상대도 사정을 알아차렸는지 더는 말을 걸지 않았다.
내가 소속된 조직에는 여러 나라 사람이 있다. 그 대부분이 모국어 밖에 이해하지 못한다. 연령이 고작 두 자릿수를 채울락 말락 할 때부터 아침부터 밤까지 전투훈련을 받는 생활을 강요받는다. 제대로 된 교육 따위를 받을 수 있을 리 없다. 외국어는커녕, 모국어를 읽고 쓰는 것조차 서투른 사람뿐이었다.
양친의 국적이 서로 다르거나 유소년기에 외국에서 자란 사정으로 복수 언어를 습득한 사람도 있기는 했으나 소수파이다.
시험 삼아 나도 반대쪽 옆에 앉아 있던 남자에게 모국어로 인사를 해 보았다. 그러나 그 녀석도 말없이 고개를 옆으로 흔들었다.
그때가 되어서야 정면에 앉아 있던 여자가 얼굴을 들었다. 간신히 의식이 돌아온 듯하다. 약의 내성에는 개인차가 있는 법이지만 이런 녀석이 제일 먼저 죽는다. 무슨 일이든 주위보다 굼뜨면 치명적이다.
눈이 마주치자마자 여자의 얼굴에 경악이 퍼졌다. 나를 알고 있나? 이 녀석 누구지? 아니, 나도 이 여자가 낯익다.
여자가 일어섰다. 아니나 다를까 현기증이 났는지 요란하게 소리를 내며 여자가 자빠졌다. 그 꼴사나운 모습에 기억났다.
「너, 살아 있었나……」
여자가 상체를 일으키면서 끄덕였다. 그는 얼마 없는, 복수 언어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아무래도 그의 모친은 우리나라 출신인 듯하다. 아이는 모친이 말하는 언어를 자연스럽게 배우는 법이다.
「다행이야. 너도 살아 있었구나」
「당연하지. 너와 같은 취급하지 마」
첫 만남은 3년 전. 나도 그도 제13차 십자군, 대규모 레기온 소탕작전의 생존자였다.
소속 부대는 물론 달랐다. 그러나 작전 개시 후 눈 깜짝할 사이에 부대고 뭐고 없어졌다. 전쟁터라는 것이 그렇지만, 그때는 유독 심했다. 당시 16살, 이미 고참병이었던 나조차 생환은 반반이라고 각오했다.
난전 중, 나는 레기온을 앞에 둔 채 우뚝 서 있는 바보를 발견했다. 순간적으로 나는 그 녀석을 밀친 후 주위를 불태웠다.
딱히 구조 같은 아름다운 행동이 아니다. 우리 병사 그 자체가 「귀중품」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동료는 구한다. 그보다, 헛되이 하지 않는다. 그런 규칙이었다.
놀랍게도 그 바보는 나와 같은 나이였다. 그 나이가 되도록 제대로 된 훈련도 쌓지 않고 갑자기 전쟁터로 내던져진 것이다. 레기온을 코앞에서 보고 놀라 당황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레기온은 인간을 똑 닮은 외견을 지녔다. 원래는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백염화증후군에 걸린 사람 대부분은 사망하지만, 그중에는 살아남는 자도 있다. 흉포해진 괴물이 되어서.
레기온 제거가 급선무인 이유는 단순히 사람을 습격하기 때문이 아니다. 레기온 자체가 감염원이 되어 새로운 백염화증후군 환자를 발생시킨다. 그리고 30년 정도 전에 발생한 이 기이한 병의 치료법은 아직도 확립되지 않았다. 이 세상의 존재가 아닌 흰 거인이 뿌린 병이다. 그럴지도 모른다.
다만, 특효약은 없지만 예방약이라면 있다. 문제는 그 예방약 루시페라제의 양산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었다. 게다가 효과가 확실히 인정되는 대상은 젊은 층뿐. 소년일수록 효과가 높다.
이리하여 신체능력이 높은 아이가 선발되어 귀중한 루시페라제를 투여받고 레기온 제거에 투입되었다. 그 아이들의 양성과 파견을 실행하는 국제조직이 하멜른 기관이었다. 피리 부는 사내가 아이들을 모아 어딘가로 데리고 간다는 동화에서 딴 명칭인데, 악취미이기 짝이 없는 명명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저기, 너는 어떻게 여기에 왔어?」
「극비……임무라고 해서」
「고액의 보수, 퇴역 허가. 받아들이고 말고는 자유, 말이야?」
그는 놀란 듯이 눈을 크게 떴으나 금세 납득이 간 듯 끄덕였다. 3년 전 그날까지 극히 당연하게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는 그는, 적어도 나보다 학습능력이나 이해력은 높다.
「여기에 있는 전원이 같은 조건을 제시받았겠지」
다시 주위를 둘러본다. 출신국이 제각각인 이유는 각국의 평판을 떠맡고 여기로 보내졌기 때문이리라. 언뜻 보기에는 나와 그 이외에 의사소통이 가능한 사람은 없다.
「이 조건을 거절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거야」
그는 옳다. 누구나 지금의 생활로부터 벗어나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고 있는 짓은 살인, 대량학살이기 때문이다. 상대는 지성이 전혀 없는 괴물이라고 교육받고는 있지만, 실제로 보면 틀림없는 인간. 그것을 산 채로 태워 죽인다.
백염화증후군은 혈액이나 타액 등의 체액으로 감염된다고 하기에 함부로 총살하면 그 체액을 흩뿌리고 만다. 그래서 어지간해서는 발포는 자제하도록 명령받는다. 우리도 위험한 물건 다루기는 사양이기에 이론은 없다.
그렇지만 눈앞에서 사람과 똑같은 생물이 불길에 싸여 죽어가는 모습은 기분 좋은 광경이 아니다. 내가 처음으로 레기온을 태워 죽인 것은 막 10살이 되었을 때였다. 그로부터 9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몇 번 보아도 싫은 광경이다.
「이게 무엇일까? 책 같지만 펼쳐지지 않아」
그가 이상하다는 듯한 얼굴로 책을 펼치려 하고 있다. 각자의 옆에 놓여 있던 두꺼운 책으로, 검은색이라고도 짙은 회색이라고도 할 수 없는 색의 표지에는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다.
「어이! 함부로 만지지 마!」
「아……」
그는 당황하며 책을 놓았다.
「방심하지 말라고, 정말」
나는 무심코 한숨을 쉰다. 이런 점은 3년 전과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 그 후, 일시적이었지만 나는 그와 행동을 함께했다. 실전 경험이 거의 없는 사람을 방치할 수는 없었다.
다행히 그는 학습능력이 높았다. 도중에 몇몇 지시를 내리기만 해도 뒤처지지 않고 따라올 수 있게 되었다. 신체능력도 뛰어났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루시페라제의 수용성이 높아도 16살에 선발되지는 않는다.
다만, 최종적으로는 별도 행동을 취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는 거기에서 죽었다고 생각했다. 작전행동이 종료되면 우리는 서로 소식을 알 방도가 없었다.
「거기에서 잘도 살아남았군. 대단히 강한 운이야」
아니야, 라고 그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네가……도망치게 해 주었으니까」
「그런 거 아니야. 그것은 내 판단 미스였어」
그와 별도 행동을 취한 것은 복수의 레기온에게 포위되었기 때문이다. 다른 방향으로 달리면 어느 쪽이든 한쪽은 도망칠 수 있다. 그만한 적의 수와 위치였다.
살아남을 가능성이 더 크고 전력으로서 가치가 높은 사람은 명확하다. 이 양자택일이라면 내가 더 안전한 루트로 가야 했다.
그런데 그때 나는 해서는 안 되는 선택을 했다. 귀신이 들렸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다. 그래서 떠오를 때마다 불쾌했다. 짜증이 났다. 작전 종료 후, 오늘까지 계속 떠올리지 않도록 노력해 왔다…….
그가 무언가 말하고 싶은 듯 입을 열려 했을 때였다. 방 한구석에서 말다툼 소리가 들렸다. 남자와 여자다. 그 녀석들도 우리처럼 우연히 말이 통한 줄 알았으나, 아무래도 그게 아닌 듯하다. 무엇이 원인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마도 사소한 것이리라. 말이 통하지 않는 상태로 서로 큰소리로 지껄이고 있는 모습을 보면.
이윽고 여자가 상대방 남자의 뺨을 때렸다. 아플 듯한 소리가 울려 퍼졌으나 아무도 중재에 나서지 않는다. 그건 그렇다. 여기에 있는 전원이 맨손으로 레기온과 맞붙을 수 있는 훈련을 받았다. 사이에 끼어들려면 상당한 위험을 각오해야 한다.
남자가 얼굴을 시뻘겋게 붉히고 여자에게 덤벼들었다. 그 순간 우리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보았다.
갑자기 여자의 발치에 떨어져 있던 책이 펼쳐졌다. 손을 댄 것도 아니고, 우연히 발에 닿아 차 버리고 만 것도 아니다.
마음대로 펼쳐진 책 안에서 갑자기 검은 손이 나타났다. 손은 순식간에 거대해져 상대 남자를 잡아들었다. 남자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띤 채 비틀어 부서져 숨이 끊어졌다. 상대 여자 또한 멍해 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당사자도 모르는 듯하다.
그것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남자가 소지했던 책이 강한 빛을 발했다. 거기에서 또 검은 손이 나오는 줄 알았으나, 아니었다. 남자의 사체가 책으로 빨려들어가 사라졌다.
남자의 모습이 사라짐과 동시에 책에서 새어나오던 빛도 사라졌다. 그리고 거무스름한 색이었던 표지는 군청색으로 변화하여 도안이 표면에 떠올랐다. 사람 얼굴과도 닮은 기분 나쁜 도안이었다.
침묵은 짧았다. 실내는 순식간에 떠들썩해졌다.
「그게……뭐야?」
「내가 어떻게 알아. 내게 묻지 마」
나는 옆에 있던 책으로 손을 뻗었다. 아까까지는 섣불리 손을 대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으나 상황이 변했다. 지금은 하나라도 더 책에 관한 정보를 찾아내야만 한다.
표지에는 문자도 그림도 없을 뿐 아니라 흠집 하나 없다. 재질도 단순한 종이와는 다른 기분이 든다. 그리고 아까 그가 말했듯이 책의 페이지는 마치 풀로 붙인 것처럼 붙어 있었다.
「저 여자, 어떻게 책을 펼쳤지?」
그때였다. 내 의문에 답하듯이, 아니, 그 의문을 비웃듯이 실내에 음성이 흐르기 시작했다. 여러 목소리가 서로 섞여 알아듣기 이만저만 어렵지 않다.
나는 필사적으로 귀를 기울였다. 모국어 같은 단어가 들렸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 자리에 있는 전원이 이해할 수 있도록 13개국어를 동시에 흘려보내는 것이리라. 음성은 중요하지만 도움이 되지 않는, 그런 내용이었다.
각자에게 주어진 것은 「마법 책」이고, 그것을 사용해 서로 죽여라,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은 2명뿐.
오직 그 설명만이 반복해서 흐른다. 이유도 목적도 밝히지 않은 채.
「뭐가 극비 임무야. 웃기고 있네」
나는 그리 내뱉으면서도 주위를 신중하게 둘러보았다. 창도 문도 없는 이 방에 도망칠 길은 없었다. 살아서 여기에서 나가고 싶다면 싸울 수밖에 없다.
여기에 있는 전원이 서로 죽이면 마지막 2명을 남기기가 더 어렵다. 고작해야 혼자 살아남거나, 자칫하면 전원이 죽는다. 그러나 첫 번째 1명이 되는 상황은 피해야만 한다.
검은 손을 나오게 했던 여자가 다시 책으로 손을 뻗는다. 그보다도 옆의 남자가 더 빨랐다. 남자는 여자의 목을 졸라 비틀었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여자의 사지에서 힘이 빠졌다. 우선은 1명.
다음 희생자는 여자를 죽인 남자이리라. 사냥감을 죽이는 순간은 누구나 무방비 해진다. 당연하다는 듯이 남자의 등 뒤를 덮치는 사람이 있었다. 2명이 동시에 덤벼들었다. 미리 짠 것이 아니다. 그저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순식간에 판단했을 뿐이다.
그러나 녀석들은 남자를 죽이지 못했다. 여자의 사체가 책으로 빨려 들어가 사라짐과 동시에 승자였을 남자가 고통스러운 표정을 띠며 쓰러진 것이다. 남자는 금세 움직이지 않게 되어 책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2권의 책이 남았다. 비취와도 닮은 녹색 표지와 호박색 표지. 어느 쪽이나 기묘한 얼굴 도안이 떠올라 있었다.
「마법 책을 사용해라……」
중얼거리는 그의 목소리는 희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책에서 검은 손을 나오게 해서 남자를 죽인 여자는 「마법 책」을 사용했기에 승자로 간주되었다. 그 여자를 맨손으로 죽인 남자는 승자로 간주되지 않았다.
「그런 것이로군. 과연」
이 경우의 정답은 최초의 한 사람이 되지 않을 것. 그래서 나는 움직이지 않았고 그에게도 움직이지 말라고 눈짓으로 전했다. 이로써 룰은 이해되었다. 상황도 파악했다.
「문제는 책의 사용법을 전혀 모른다는 것인데」
웃기지도 않는다. 마법 같은 되도 않는 것을 어떻게 사용하라고?
배어 나오는 조소가 느껴졌다. 웃기지도 않건만. 나는 내가 지독히 동요하고 있음을 겨우 깨달았다.
처음으로 레기온을 눈앞에서 보았을 때조차 평정을 거의 잃지 않았다. 훈련대로 하면 된다, 불의의 사태가 발생했다 해도 돌파구는 반드시 있다. 그것을 알고 있었기에 냉정하게 있을 수 있었다.
이번에는 어떤가? 훈련도 무엇도 관계없다. 돌파구가 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눈앞에서 3명이 죽었다. 그것도 연거푸. 전부 이 거지 같은 책 때문에!
책을 힘껏 바닥으로 내던지려 했을 때 내 팔을 누르는 사람이 있었다.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이 1명이 아니라 2명이라 다행이야. 너와 서로 죽이지 않아도 돼. 함께 살아남을 수 있어. 우리는 행운이야」
이것을 행운이라 부를 수 있을지. 그러나 그는 미소 짓고 있었다. 나처럼 평정을 잃은 거짓 웃음이 아니라 진심임을 알 수 있는 미소였다.
「진정해. 다른 사람은 모두 혼자야. 하지만 우리는 2명. 두 사람의 머리로 생각하면 다른 사람보다 빨리 방법을 찾을 수 있어」
그럴지도 모른다. 여기에서는 의사소통을 주고받을 수 있는 상대가 있는 것이 큰 무기가 된다.
「미리 말해 두지만, 나, 머리 나빠」
「알고 있어」
그는 킥킥 웃고는 책 표지에 손을 댔다. 다음은 진지한 표정으로 부피를 조사한다.
「아까 그 사람 화냈어. 살해당할 뻔했어. 검은 손은 그중 한쪽과 연관이 있을 거야」
혹은 양쪽이 마법 책인지 무엇인지를 사용하는 조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살해당할 뻔해야만 발동해서는 귀찮다. 어쩌면 「서로 죽이라」는 위험한 말을 한 것도 그 조건을 만족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앗. 혹시……」
무언가 떠올랐는지 그가 얼굴을 든다. 그 표정이 갑자기 얼어붙었다. 왜 그럴까? 그러나 나는 질문을 할 수 없었다. 나를 향해 뻗어 오는 그의 양팔을 보았다.
등에 충격을 느끼고서야 떠밀렸음을 알았다. 기울어진 시야 안에서 거대한 검은 창이 그를 꿰뚫고 있었다. 모든 소리가 사라졌다.
그는 내 등 너머로 저 검은 창을 보았으리라. 그래서 재빨리 밀쳤다. 3년 전의 빚을 갚을 생각이었는지, 그렇지 않으면…….
옆의 책이 빛나기 시작한다. 나는 당황해 그에게 다가갔다. 이대로는 그가 책으로 빨려 들어가 사라지고 만다. 안아 올려서 그 손을 꼭 잡았다.
사라지지 마! 사라지지 말아 줘!
그의 입술이 달싹였다. 뭐라고? 무슨 말을 하려고? 그러나 나는 그의 나라의 언어를 모른다. 그러고 보니 이름조차 몰랐다. 살아서 재회할 수 있을 줄은 몰랐기에 나도 그도 이름을 말하지 않았다.
갑자기 품 안에서 무게가 사라졌다. 잡고 있던 손이 빠져나가듯이 사라졌다.
남은 것은 붉은 표지의 책이었다. 핏빛을 떠올리는 심홍. 떠오른 얼굴은 그와 전혀 닮지 않았다.
눈앞이 하얘졌다. 절규했다. 그저 절규했다. 본 적도 없는 문자가 무수히 나타나서 시야를 덮는다. 그래도 나는 계속해서 절규했다.
느닷없이 사라진 소리가 돌아왔다. 비명을 들었다. 몇몇 신음 소리를 들었다.
바닥에서 수많은 날카로운 창이 튀어나와있다. 실내에 있던 전원이 순식간에 꿰뚫리는 광경을 나는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기묘한 문자에 시야가 덮인 탓에 어쩐지 현실감이 없었다.
이윽고 시야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방 반대쪽에 남자가 서 있었다. 남자는 승리에 우쭐대는 듯한 미소를 띠며 책을 들고 있다. 이 남자가 바닥에서 창이 나오게 했다.
아무래도 나는 그 무수한 문자에 보호되어 불상사를 피한 듯하다.
살아남았다. 그리 생각해도 기쁘지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건너편에 있는 남자처럼 승리에 우쭐대는 미소를 띠고 싶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해서 죽어간 사람들을 애도할 기분도 들지 않았다. 아무래도 상관없다. 솔직히 그렇게 생각했다.
문득 시야 한구석에서 무언가가 빛났다. 책이다. 책이 빛나고 있었다. 승자일 터인 그 남자와 내 책이.
남자가 당황한 듯이 무언가 아우성치고 있다. 마지막 2명만은 여기에서 나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냐는 말이라도 하고 있으리라.
그러나 목소리는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은 2명」이라고 했지만, 살아남으면 여기에서 나갈 수 있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그럴 줄 알았다. 우리가 소속된 조직의 상층부는 제대로 된 놈들이 아니다. 어차피 루시페라제가 예방약이라는 말도 거짓부렁이다. 그 약에는 발병을 늦추는 효과는 있어도 병을 막을 수는 없다.
그 말은 얼마 전에 들었다. 우리는 속아서 손쉽게 이용당할 뿐이었다. 예방효과가 없는 약을 투여받고 백염화증후군 감염원 한복판으로 내던져졌다. 피리 부는 사내에게 끌려간 아이들은 늦든 빠르든 발병해서 죽는다. 혹은 괴물이 되어 살해된다.
아마 이것도 무언가의 인체실험이리라. 여기로 왔을 때부터 우리 운명은 결정되어 있었다.
남자가 아우성치는 목소리가 사라졌다. 칠흑의 표지가 된 책에 얼굴이 떠오르는 모습을 나는 보았다. 그와 같이 본인과는 전혀 닮지 않은 얼굴이었다.
아니, 이것을 보았다고 말할 수 있을는지. 나 자신이 이미 책으로 빨려 들어가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색의 표지가 되었는지 자신에게는 보이지 않지만.
아아, 그렇군. 흰색. 백의 서.
바보 같은 이름이다. 우스워서 견딜 수가 없다. 지금부터가 새로운 촌극의 시작인가. 다른 얼굴을 부여받은 우리는 무엇을 연기하면 되지?
나는 그저 계속해서 웃는다._M#]
니어 소설 해석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늦게 집에 와서 피곤한 상태에서도 정신없이 즐겁게 읽었네요.n주인공 니어는 물론 카이네, 에밀, 무려 백의서까지! 등장인물들의 숨은 이야기를 여러가지 알수있어서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n다시한번, 번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덧글 고맙습니다.n읽고 즐거워하시는 분들이 계시니 역시 혼자만 보고 말지 않고 알려드리기를 잘했구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ㅂ-)a
소설 번역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n정말 재밌게 읽고 있습니다.nn카이네편이 전 제일 좋네요 (….)
게임만으로는 짐작도 할 수 없는 뒷이야기가 많아서 보는 재미가 있죠.n카이네편의 충격을 견디셨을 뿐 아니라 제일 좋다니 대단하시군요, 혹시 여자분이신 겁니까(…)
잘봤습니다.~~nn흰둥이도 스토리가 있네요 . ㅋ .. 불쌍하다는.
처음에 몇 편만 대강 읽었을 때는 몰랐는데, 하나하나 찬찬히 읽어 보니 백의 서 이야기도 있더군요’ㅅ’n니어에 나오는 사람치고 안 불쌍한 사람이 없지요ㅠ_-